남의 나라 말 배우기가 수월할 리 만무하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을 익힐 때 유난히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나라 말이건 통상 한 단어에는 한가지 뜻이 담겨 있고 문장도 대체적으로 정형화 돼있으나, 우리나라 말은 단어의 뜻이나 문장이 하도 복잡해서 헷갈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 말을 배울 때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여러 단어가 한가지 뜻으로 쓰이는 동의어(同義語)와 한 단어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 다의어(多義語)다. 그냥 ‘노인’이라고 하면 될 것을 노인장·노장·늙은이에 영감·노파·할아버지·할머니까지 노인을 묘사하는 비슷한 단어가 수두룩하고, ‘배’라고 하면 먹는 배를 말하는지 사람의 배를 말하는지 타는 배를 말하는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여기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 또는 사회에서 자기네들끼리만 사용하는 은어(隱語)까지 더해지면 한국말은 암호문을 방불케 한다. 짭새(경찰) 큰집(교도소) 구름과자(담배) 고딩(고등학생) 노땅(노인) 삐꾸(멍청한 사람) 등등 한국 사람도 들어보지 못한 은어가 소사전(小辭典) 한 권은 만들고도 남을 만큼 널려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 말 배우느라 정말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어를 쓰면 무슨 특수층이나 되는 듯이 마구 은어를 만들어 쓰더니만 결국 은어가 일을 내고 말았다. 조직폭력배들이 사용하는 은어(용어)를 놓고 법원이 엇갈린 해석을 하여 1심에서 6년형을 받은 조폭두목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1심에서는 ‘돈 가져와’를 ‘흉기챙겨와’로 ‘건너가 내용 들어봐’를 ‘상대를 기습공격해’라는 은어로 판단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이를 은어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쟁점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지겠지만 어떻게 진실을 가려낼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린다.
은어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부패하거나, 변혁의 속도가 제도의 속도와 구성원의 속도를 추월할 때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 사용자끼리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표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은어는 자연발생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마땅히 제어할 방법도 없다. 오직 쓰는 사람들이 취사선택을 잘 하는 도리밖에.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면 출처가 불명한 난해한 은어들이 도배질을 해놓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학에 은어해독과라도 개설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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