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산업화 바람에 몸살을 앓던 시절, 동네 어귀마다에는 어김없이 ‘구멍가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때는 요새같이 생필품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사정 또한 수월치가 않아서 막말로 마누라 친정 보내고는 살아도 동네에 구멍가게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갖춰놓은 물건이라야 보잘 것 없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 빼고는 다 있기 때문에 당시 서민들에게는 구멍가게가 생활의 일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민 태반이 빈곤탈출을 위해 소처럼 일하던 그 시절, 구멍가게에는 가슴 찡한 애환들이 얽혀 있다. 가족이 급병이 나 돈이 없을 때 뛰어가는 곳이 구멍가게요, 친정집 식구 찾아와 외상으로 반찬거리 사러 가는 곳도 구멍가게다. 동짓달 기나긴 밤 연탄불 꺼졌을 때도 구멍가게 문을 두드렸고, 주머니 가벼운 월급쟁이 소주 한잔 생각 날 때도 구멍가게는 허물없는 벗이 돼 주었다.
이처럼 동네사람들 치닥거리를 다 해주던 구멍가게가 이제 역사에 작은 점하나 남기고 사라져가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동네가 좀 크다 싶으면 수퍼마켓이라는 것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웬만한 중소도시까지 대형할인점이 속속 등장하여 구멍가게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할인점에 가면 원스톱 쇼핑에다 가격마저 후려쳐 놓으니 누가 그곳을 마다 하겠는가, 자본주의가 만개하면 할수록 온정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딱할 노릇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조사한 ‘통계로 보는 유통개방 10년’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된 지난 1996년 이후 70만6천여개에 이르던 구멍가게가 50만여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형 수퍼마켓이나 할인점 또는 편의점에 밀려 동네 구멍가게는 씨가 마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구멍가게라고 꼭 죽으라는 법만은 없다. 구멍가게끼리 상호를 통일하여 구매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물건도 공동구매하여 가격을 낮춘다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갖출 수가 있다. 또 주민들과 가까이 있다는 입지조건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십분 살릴 수 있다면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코 묻은 돈의 추억이 살아있고 동네 사람들 냄새가 물씬 풍겨나오는 한 구멍가게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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