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를 헤쳐온 장노년층 남자들은 요즘 MBC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큰 줄거리가 이미 알려진 터여서 별로 히트를 칠 것 같지 않더니만, 중간중간 감춰진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하여 완성도를 높인 것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끈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 전두환 역의 이덕화를 비롯 대부분 배역들이 실제 인물과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를 한층 높여주는 원인이 된 것 같다. 극중에서 이덕화가 “좋아, 아주 좋아”라며 전두환의 성대묘사를 할 때는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웃음을 참기가 힘들 정도로 재미가 있다.
사실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러 웬만큼 상처가 아물었으니까 느긋하게 안방에서 그 시대를 되돌려 보고 있지,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리얼하게 회상을 해본다면 웃음은 커녕 치가 떨릴 일이다. 정권을 탈취하려고 나라 지키라는 군인들을 앞세워 적군 무찌르듯 무고한 국민들을 살해한 죄를 어떤 방법으로 응징해야 하는지 도무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더욱 얄궂은 것은 실패한 쿠데타만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지, 성공한 쿠데타는 오히려 권력을 움켜쥐고 국정을 농단한다는 점이다. 간혹 12.12사태 주역들과 같이 훗날 역사가의 심판대에 오르는 경우도 있으나 거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아 큰 의미가 없다. 그토록 참혹했던 쿠데타도 세월이 흐르면 별 저항없이 우리들 머리속을 맴돈다는 것이 분통터진다.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참 희한한 일이 다 벌어지고 있다. 5공탄생의 1등공신인 허화평씨가 포털사이트의 정치인 검색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허 전 의원을 존경한다. 당신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댓글까지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올곧은 쿠데타 세력으로 지나치게 묘사가 된다 싶더니 일부 시청자들의 눈에 정의의 사도처럼 비춰진 모양이다.
아직도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를 혼동하는 국민이 있는가 싶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장난삼아 올렸겠지 짐작도 해보지만 장난치고는 좀 으시시한 느낌이 든다. 혹 이런 댓글 자주 올라오다보면 ‘나도 정의의 쿠데타 한번 일으켜 봐, 하는 얼빠진 군인 나올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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