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달하여 사람살기가 엄청 좋아진 요즘이사 겨울나기가 일도 아니지만, 대다수 국민이 땅을 파서 먹고살던 농경사회에서는 한 겨울 지내기가 여간 대근하지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입을 것이 모자라는 데다 주거환경도 열악하기 이를 데 없어 몇몇 지주를 제외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집에서는 매서운 겨울맞이가 보통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웃에 손벌리지 않고 자급자족만 해도 만족해 하던 그 시절, 웬만한 가정에서는 겨우살이 준비가 실로 버거웠다. 쌀 보리와 같은 주곡이 모자라던 터라 고구마나 감자 같은 부식을 준비해야 했고, 겨우내 버텨야 할 땔감도 미리미리 확보해 놓아야 했다. 또 솜을 타 이불을 다시 짓고 헤진 옷가지와 양말 따위를 꿰매놓는가 하면, 문짝에 새 창호지와 문풍지를 발라 방안의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대비를 하기도 했다. 밑반찬을 장만하기 위해 김장을 하는 것은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차근차근 겨울맞이를 했던 것이다.
그 뿐인가. 비록 너도나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거둬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 '치계미(稚鷄米)를 나눠 드리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 치계미는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고 마을사람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보태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근로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을 위해 최소한의 생계지원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이어받아야 할 미풍양속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1만6천달러를 넘어섰다는데도 도처에서 못살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민은 농민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우리가 가장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도대체 세계 11대 무역국가로 부상할만큼 외화를 많이 벌어들였다면서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국민은 더 늘어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더 한심스러운 것은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정부가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기다리면 곧 좋아진다' 는 말만 되풀이 할뿐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 같으면 처지가 비슷해 서로 위안이 되거나 도와주는 이웃이라도 있어 의지가 됐는데 지금은 냉혹한 현실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기나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날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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