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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나지오'

최초의 국산 라디오 개발은 1959년에 시작되었다. 그 해 말경에 진공관 5개를 사용하는 모델명 〔A-501〕의 라디오가 만들어졌는데 모델명 ‘A-501’에서 A는 교류전원(AC)의 첫 자, 5는 채택된 진공관수, 01은 국산 제1호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 80대가 금성사의 부산 연지동 공장에서 전국의 전기상점으로 첫 출고가 된 것은 1959년 11월 15일이었다. 1895년 마르코니가 무선전신을 발명한 지 64년 만에 그리고 1927년 이 땅에 처음 라디오방송국이 개국한 지 32년만의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27년 2월 16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사단법인 경성방송국(JODK)’이 출력 1㎾ 주파수 690㎑로 운용하였는데 그 수신기인 라디오는 주로 미군 PX를 통해서 유통된 미제 라디오였었다.

 

한국방송협회에서 간행한 ‘한국방송사’를 보면 당시 우리나라 라디오 보급대수는 31만6천대였으니 최초 국산 라디오 80대 생산은 그 비율로 보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외제 라디오 가격이 3만3천환 정도여서 그보다 40% 저렴한 2만 환의 국산 라디오는 나름대로 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출발하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동심초’, ‘이 생명 다하도록’, ‘아낌없이 주련다’, ‘빨간마후라’, ‘떠날때는 말없이’같은 연속극을 들으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라디오 연속극에 등장했던 구민, 고은정, 오승룡, 장민호씨 등 성우의 인기는 대단했다.

 

아이들에게도 라디오 프로그램은 인기가 만점이었다.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파란 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로 시작하는 ‘태권동자 마루치’는 아이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정오가 되기 직전에 들었던 ‘김삿갓 북한방랑기’는 5분의 짧은 시간에 당시 잘 모르고 있었던 북녘 사정을 배경으로 풀어내어서 더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가 요즈음의 텔레비전보다 인기를 끌었던 시절, 고장 난 라디오를 수리하던 ‘서낭댕이 나지오빵’ 주인은 전문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지금도 ‘라디오’란 글씨를 보면 그 서낭댕이 가게 유리창에 붙어있던 ‘나지오’란 글씨가 떠오른다. 사실 우리 입에는 ‘나지오’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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