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70년대 태권도는 한국의 상징이었다. 당시 태권도 사범들은 맨 몸 하나로 아메리카나 중동, 아프리카로 날아가 주먹으로 벽돌을 깨고 100㎏이 넘는 거구의 서양인들과 맞대결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제자를 지도해 세계인의 뇌리에 태권도라는 한국문화를 심었다. 그들이야말로 한류(韓流)의 원조였던 셈이다.
그런 태권도가 지난 7월 큰 고비를 맞았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퇴출종목으로 꼽혔던 것이다. 다행히 세계태권도연맹(WTF) 등의 전방위적 노력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 때 IOC는 태권도의 세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낮은 흥미도와 판정의 공정성, 그리고 미디어 노출이 저조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측은 200쪽에 이르는 개혁보고서를 만들어 설득에 나섰다. 채점및 규칙개정, 전자호구 도입, 과감한 주먹기술의 도입 등을 담았다. 태권도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 완전히 탈바꿈된 모습을 선보여야 한다.
그러나 정작 개혁할 것이 그것만일까. 오히려 태권도가 너무 이기고 지는 시합에만 집착, 신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실 태권도는 경기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해방이후 본격적으로 경기화된 것은 1963년 전주에서 개최된 44회 전국체전 부터였다. 1961년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되고 전국체전에 공식경기로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에 이어 1975년에는 일본 가라테를 제치고 국제경기연맹(GAISF)에 가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시범종목에 채택됐고 2000년 시드니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 성장과 달리 태권도에 대한 외국인의 존경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태권도 경기장에서 외국인들은 한국 선수가 이기면 야유를 보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편파판정 시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유럽태권도연맹 같은 경우는 국기원에서 발급하는 단증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단증 발급을 공공연히 요구한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경기측면만 강조한 때문이다. 원래 태권도는 정신(생활)을 중시했다. 초창기 외국에 나가 태권도를 개척했던 사범들도 의리나 예의, 극기를 강조하고 모범을 보였다. 지난해 말 무주 태권도공원을 유치한 전북으로서는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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