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김진섭의 ‘백설부(白雪賦)’
“눈이 내린다 눈을 맞으며/ 눈을 밟으며 길을 걷는다./ 여인이여,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내곁으로 오라”-김동명의 ‘답설부(踏雪賦)’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김광균의 ‘설야(雪夜)’
“설화(雪花)는 거두어/ 하늘에 다시 피리라”-김남조의 ‘설화(雪花)’
눈이 내리는 날은 강아지나 어린이뿐 아니라 연인들을 낭만주의자로 만든다.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덮고 순백의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리라. 겨울이 겨울다운 것은 백설의 서정시가 있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많은 사람들은 교통불편을 생각하고 겨우살이를 걱정하게 된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무서운게 없을지 모른다.
“눈은 희다고만 할 수는 없다/ 눈은 우모(羽毛)처럼 가벼운 것도 아니다/ 눈은 보기 보다는 무겁고/ 우리들의 영혼에 묻어 있는/ 어떤 사나이의 검은 손때처럼/ 눈은 검을 수도 있다”-김춘수의 ‘눈에 대하여’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 그것은 말하자면 기적같이 와서는 행복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김진섭의 ‘백설부’
올 겨울은 초입부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요 며칠 호남지방에 내린 폭설로 피해액만 벌써 2000억원을 넘어섰다.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무너지고 학교가 휴교하는 등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실 눈은 대기중에서 결정화(結晶化)되어 녹지 않고 지면에 떨어지는 고체상태의 물에 불과하다. 6각형 모양으로 된 빙정(氷晶)일 뿐이다. 호남지역은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 대륙고기압의 주 이동통로여서 이번에 폭설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눈 밝은 시인들은 차가운 눈속에서도 봄의 향취를 읽어낸다.
“눈이 쌔고 쌘 답답한 이 겨울도/ 금잔디 속잎 나고 종달새 지저귀는/ 그저 그 봄인 양으로 들썩이는 마음”- 이병기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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