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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출사표

"느린 말과 무딘 칼 같은 보잘 것 없는 재주지만 있는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겠습니다. 그리하여 옛 도읍지를 되찾아 폐하께서 다시 한(漢)의 왕실을 일으켜 세우시도록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 재상이던 제갈공명이 위(魏)나라 토벌을 위한 출병을 앞두고 황제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의 한 구절이다. 전 후 두편으로 된 이 글은 구구절절이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부터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출사표를 던진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출마선언을 하는 입지자들 중 대체 몇이나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출사표에 담긴 뜻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출마선언을 해댄다면 1800년 전에 죽은 제갈공명이 지하에서 포복절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출사표 던지는 소리가 요란하다.별 하는 일 없이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3류 정치인에서부터 공직자 사업가 회사원 시민운동가에 죄질이 고약한 전과자까지 입지자들의 출신성분도 각양각색이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출마를 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들이대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가 한번쯤 자문한 다음 출마를 결심하라는 충고는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선거판이라면 극도로 몸을 사리던 공직자들이 이번 선거에 대거 나서는 것도 다소 이채롭다. 행정 경험을 살려 주민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출마를 한다니 박수로 환영해 마지 않을 일이지만, 일부 입지자의 이면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 뒷맛이 영 떨떠름하다. 올해부터 도입되는 지방의원 유급제로 재정규모가 열악한 지자체는 한숨이 깊어지는데, 연간5000~7000만원에 달하는 급여가 탐이 나 출사표를 던지는 후보라면 그는 절대 주민을 위해 희생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국회의원 입지자가 지역의 큰 어른을 찾아가 길을 물으니 그 어른 왈(曰) "자네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하고, 떨어지면 집안이 망하네"라며 일갈을 했다고 한다.새겨들을 만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는 유별나게 후보자가 몰려 평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팔린 입지자들은 패가망신하기 전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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