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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20여년 노숙자 겨울나기 "칼바람보다...술없는 밤 더 두렵다"

폐품팔아 컵라면 먹고...소주때문에 쉼터 기피

전주시 중앙동 옛 전주시보건소 앞에서 50대 남성이 '노숙자'라는 문패를 내걸고 생활하고 있다. (desk@jjan.kr)

6일 자정 전주시 중앙동 옛 전주시보건소 앞. 온갖 박스와 허름한 소파 등으로 담을 싼 3평 남짓한 공간에 ‘노숙자 털보’라는 문패가 보인다. 세, 네 겹 이불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7일 새벽 6시, 어둑한 숙소에 머리까지 이불을 둘러쓴 채 두 사람이 곤하게 자고 있다. 차마 깨울 엄두가 안 난다.

 

오전 10시, 새벽까지 있던 리어카 두 대 중 한대가 안 보인다. 숙소에 가보니 노숙자 한 명이 박스에 등을 기댄 채 우두커니 앉아있다.

 

‘털보’라는 별명의 노숙자 정모씨(55)는 노숙 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할아버지가 한의사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젊어서 건달 생활을 하고 감옥에도 들락거리면서 무일푼이 됐다고 한다. 한때는 포장마차도 운영했고, 고물상도 해 봤지만 ‘몹쓸 녀석들 탓에 몸뚱이만 남았다’고 넋두리를 풀어놨다.

 

이날 새벽기온은 영상 7℃. 이 정도 날씨는 추위도 아니란다. 지난해 큰 눈이 내리고 매서운 영하의 날씨가 계속 됐을때도 괜찮았다고 한다.

 

겹겹이 껴입은 옷과 둘둘 말린 이불 때문이 아니다. 술기운에 몸이 달아올라 거뜬하다는 것이다.

 

“난 3, 5, 7, 9로 마셔. 아스피린(아스파라긴산)이 들어간 참이슬만 마시지.”

 

많이 마시면 하루에 소주 5병을 마시고 평소에도 두어 병은 거뜬하다고 자랑을 한다. 밥과 안주는 700원짜리 컵라면 하나.

 

그렇다고 정씨가 마냥 놀고먹는 술꾼은 아니다. 거의 매일 새벽 시내를 돌며 폐박스와 고철을 모아 고물상에 판다. 단골고물상에 사정해 사흘간 빌린 리어카에 폐박스가 가득하다. 3000원 어치란다. 그래도 폐신문은 좀 낫다.

 

“㎏당 80원하는 신문은 할아버지고 ㎏당 35원인 박스는 손자뻘이지.”

 

㎏당 4000원하는 구리 제품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횡재하는 날이다. 양은냄비(㎏당 1000원)도 좋은 돈벌이다. 올해 중순 주민등록이 말소돼 기초수급자 지원금 27만원도 끊겼다.

 

정씨가 전주에 터를 잡은 것은 4년 전. 서울, 인천, 부산 등을 전전하다 전주남부시장 싸전다리 밑, 다가공원 화장실 등에서 생활했고 가끔 노숙자 쉼터, 알코올병원, 교도소 등에 신세를 졌다고 한다.

 

“성격이 급한 탓에 폭력범은 몇 번 됐지만 절도는 안 했다”고 또 자랑이다. 버려진 물건을 주어 팔다보니 이제 눈치가 십단이란다. 십여 개피가 넘게 들어 있는 담뱃갑을 꺼내 보이며 “가끔 초등학교 화장실 천장을 뒤져 보면 감춰 놓은 담배가 나온다”고 말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정씨지만 얼마 전부터 동료가 생겼다. 장모씨(65)가 ‘노숙자 털보’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것. 각자 리어카를 끌고 폐품을 수집해 돈을 벌고 있다.

 

왜 쉼터에 가지 않느냐고 묻자 장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술을 마실 수 없어 답답하다는 것.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조그만 방과 리어카 한대를 갖는게 정씨의 꿈이다. 그렇게 되면 수십년째 몸에 익은 술과 노숙생활을 끊고 성당에도 열심히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자리를 뜨려는데 “장씨가 고물상에 물건을 팔고 먹을 것을 한가득 사올 테니 들고 가라”고 붙잡았다. 허름한 차림의 한 노인이 멀리서 리어카를 끌고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내에는 쉼터 2곳에 노숙자 30여명이 있으며 거리 노숙자 7∼8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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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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