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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포쇄(曝灑) - 백성일

바람 끝이 달라졌다.제법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다.불을 넣고 홑이불이라도 덮어야 잠 잘 수 있다.어제가 가을로 깃드는 처서였다.'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이 있다.결실로 접어 드는 때라 비가 오면 흉작이 들기 때문이다.지난 여름은 여름이 실종되다시피 많은 비가 내렸다.정읍에 기록적인 420㎜의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를 겪었다.

 

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따갑다.그래야 곡식이 영글고 고추도 말리고 옷도 말리고 책도 말릴 수 있다.농가월령가에서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曝灑)하소"라고 권하고 있다.포쇄는 바람에 쐐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한자 '처(處)'는 머물러 정지한다는 뜻이어서 곧 더위가 머무는 때가 처서다.농가월령가 7월령에도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쏘냐'하며 풀죽은 염(炎)장군을 조롱했다.

 

지구온난화로 기후 변동이 심해 처서가 지나도 국지성 호우와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란 예보가 있다.워낙 비가 많이 내려 기청제(祈晴祭)까지 지내야 할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다.하늘이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끊이지 않고 자주 내려 따가운 햇볕이 그렇게도 그리웠다.햇볕은 생명이다.햇볕이 이렇게 귀한줄 미처 몰랐다.지금부터의 햇볕은 다른 때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주여,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성시켜,마지막 단맛이/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이하 생략.실로 지난 여름은 고통스러웠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로 서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장사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었다.

 

김현승(金顯承)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생각난다.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이하 생략.지난 여름 비 맞아 지쳐버린 맘들을 이 가을 에 포쇄해서 비워 놓으면 어떨까.백성일주필

 

/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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