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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올기쌀 - 조상진

예전 같으면 쿵덕 쿵덕 올기쌀 찧는 소리가 들릴 때다. 한가위 무렵, 농촌에선 본격 추수에 앞서 올기쌀을 만들어 먹었다. 햇벼를 맛보고픈 마음에서도 그렇고, 식량이 떨어져 배를 채우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올기쌀 만드는 일은 덜 익은 올벼를 베는 일부터 시작했다. 낫을 숫돌에 싹싹 갈아 논 귀퉁이의 벼를 베어냈다. 이것을 홀테에다 대고 훑었다. 요즘은 농업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60·70년대만 해도 시골엔 홀테없는 집이 없었다. 이후 탈곡기가 나와 발로 밟으면 씽씽 돌아가며 일손을 덜었다.

 

이렇게 훑은 나락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쪄냈다. 쪄낸 알곡은 마당에 펴 놓은 멍석에다 말렸다. 너무 바싹 말리면 좋지 않았다.

 

이것을 절구통에 넣어 찧거나, 디딜방아로 가져가 찧었다. 한번 찧은 나락을 키로 까불러 벗겨진 껍질을 날려보내고 다시 찧었다. 키질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쌀 한톨 나가지 않고 껍질만 솔솔 내보내는 게 고수급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올기쌀은 요긴하게 쓰였다. 한가위가 빨라, 아직 나락이 여물지 못해 추수하지 못할 때는 제사용으로 사용되었다. 또 별다른 군것질 거리가 없던 시절 좋은 간식이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입이 궁금할 때마다 한 웅큼씩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뒷마당의 감이 아직 익지 않은 철에 귀한 손님이 오면 접대용으로 내놓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들에게 고향의 햇곡식으로 한 두되씩 보내주면 그렇게 좋아했다.

 

이러한 올기쌀도 옛 얘기가 되었다. 쌀 자체가 천덕꾸러기가 된 탓이다. 1500년 이상 우리 민족의 주곡 자리에 있던 쌀의 위상이 추락한 것이다. 쌀 소비량도 급감하고 그 자리를 피자와 빵이 위협하고 있다. 육류와 과일 소비량도 급증했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 여름 오랜 폭우와 태풍, 병충해 등으로 수확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쌀값이 조금 오를 기미가 보이자 정부는 쌀값 하락정책을 펴 농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단체에선 공공비축미 출하 거부 등에 나설 태세다.

 

얼마 전 재래시장 옆을 지나다 한 할머니가 올기쌀을 파는 것을 보았다. 옛 생각에 덥썩 사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참았다. 치아도 성치 않은데다 사간들 환영할 사람이 없어서다. 애써 외면하는 스스로를 보며 농촌의 운명을 떠올렸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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