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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에도시대

일본에서 가장 평화스러웠던 시대는 ‘에도시대’였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이 서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좋은 관계를 지속했던 시대도 역시 일본의 에도 시대, 250년이었다.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을 연상하면서 일본을 앙숙으로만 알고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국립 전주박물관이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문화 체험 전시실에서 특별전으로 ‘평화와 번영: 에도시대 이시카와 문화전’을 열었다. 일본의 대명(大名)이란 서양의 중세시대의 영주(領主)와 같은 존재들인데 이들이 입었던 갑옷 그리고 조선 통신사들의 유물도 전시됐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조선에서는 일본을 가리켜 ‘불구 대천지 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고 했는데 이말은 하늘을 같이 처다보면서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정권을 다시 잡은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세키카 하라’ 전투에서 승리한후 일본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임진왜란에 참가를 하지않은 노회(老獪)한 영주였던것 같다. 그는 일본의 통치권자가 된 후 경직된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임진왜란에는 자기는 참전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선은 임진왜란때 강제로 잡혀간 조선의 포로들을 데리고 올겸해서 결국은 에도시대 250년간, 12차례 사신단을 일본에 보내기도 했었다

 

1607년 조선 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갔었던 경섬의 기록이 바로 ‘해사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정사는 여우길, 종사관은 정호관이었으며 일행은 504명이었다. 이들의 정식명칭은 ‘회답겸 쇄환사’였다. 통신사 일행은 1607년 1월12일, 조정에 하직인사를 하고 한양을 출발 2월 27일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로 건너갔다.

 

3월 3일부터 20일까지 대마도 이즈하라에 머문다음 시모노세키로부터 세토나이 항로를 거쳐 오사카, 교토에 이르러 에도, 즉 지금의 도쿄에 도착한 것은 5월 24일이었다. 이와같은 일본과의 교린은 1604년 사명대사, 유정과 손문욱이 화친을 위해 대마도를 방문한후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조선과 평화적 관계를 맺었던 에도시대를 일본은 배워야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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