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00:00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아파트 공화국의 도시

"전주를 처음 왔을 때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아파트 건물들이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이고 전통문화도시라는 이미지와 너무도 맞지 않는 거대한 아파트 건물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은 사실 충격이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 일본 가나자와 대학 오오바 요시미 교수가 전주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 되돌려준 말이다. 오오바 교수는 "그것도 도시를 들어서는 입구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신도시 건설과 주택 문제 해결이라는 과제가 얽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같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곤궁한 대답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프랑스 젊은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공화국> 을 읽다보면 그 부끄러움은 더 깊어진다. 발레리 줄레조는 프랑스에서 한국 사회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연구자다. 서울을 처음 방문했던 1993년. 그는 서울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슬럼화 되어버려 골칫거리가 된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번창할 수 있었을까가 연구의 시작이다. 그는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일곱 군데의 아파트단지 중 한 군데에 거주하면서 한국의 연구자들이 앞서 하지 못했던 아파트공화국의 본질과 문제점을 짚어냈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으니 당연히 하늘로 집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는가." 한국인들의 빤한 대답에 그는 수많은 질문을 제기하면서 좀 더 인간적인 도시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개발에만 목매었던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그의 분석이 서울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대도시부터 중소도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운 도시는 한 곳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아파트는 이제 우리사회의 중심축이 되었다. 성공의 척도조차 아파트 평수로 가늠하는 시대가 아닌가.

 

인구 감소세로 한국의 주요도시로부터 중소도시쯤으로 추락하고 있는 전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전주는 아파트단지의 난립과 증가세에 따른 문제점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더 심각하다. 무분별한 전주의 도시개발이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정체성 훼손을 갈수록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높다.

 

전주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행진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적인 도시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그 대안을 위한 논의와 실천 운동이 절실해졌다. 그런데 환경은 정 반대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지금은 전주 서부신시가지 일대의 난개발이 예고되어 있다. 전주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