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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주의 변신

기분 좋은 선물을 받았다. 지인의 친구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온 막걸리를 함께 브랜드화하고 상품화했다는 ‘손막걸리’였다. 주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손막걸리려니 싶었다. 그런데 설명서를 보니 이게 좀 심상치 않았다. 뚜껑을 열 때 천천히 조금씩 가스를 빼야 한다거나, 샴페인 잔에 꼭 마시라거나 등 술 한잔 나누는데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막걸리가 아닌 ‘막페인’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는 설명도 덧붙여 있었다.

 

마침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에서 시음을 했다. 애주가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다. 함께 놓였던 와인은 남았으나 ‘막페인’은 바닥이 났을 정도다.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마음 선하게 하는 광고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중 마지막 문구.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져 많은 양을 생산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지만, 막걸리에 담긴 정성만큼은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마음을 빼앗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 술을 담은 병의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시음 자리에서도 ‘빈 술병을 갖고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가양주(家釀酒)의 변신은 성공적이다.

 

가양주는 요즈음 술처럼 맛이나 향은 없고 알코올 순도만 높아 조금만 마셔도 금세 취하는 그런 술이 아니다. 달고 부드럽거나 과일 향기와 같은 깊은 향취가 있고, 깊고 순한 듯 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 그래서 흥취를 더하는 술. 그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주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집안 대대로 물려온 가양주의 전통이 사라진 자리에 상품으로 부활한 전통주가 적지 않다. 우리 지역에도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전통주가 많다.

 

사실 가양주로 상징되는 전통주의 역사는 고단하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전통주는 급속하게 몰락했다. 가양주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습였지만 일제는 가정에서 빚는 가양주를 ‘밀주’라해 금지시켰다. 더러는 은밀하게 가양주의 전통을 지켰지만 정작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후에도 가양주는 아름다운 풍습의 자리를 다시 찾지 못했다. 서양술이 들어오고 정부가 통제 정책에 나서면서 가정에서 술을 빚는 일이 더 철저하게 금지됐기 때문이다.

 

사라졌던 가양주의 전통이 되살아나고 있다. ‘막페인’처럼 전통주가 지닌 미덕을 지키면서도 품격 있는(?) 상품화에 성공한 가양주들이 눈에 띈다. 우리문화의 의미 있는 복원이 반갑다. 상업성에만 눈 팔지 않는 가양주의 아름다운 상품화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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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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