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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힘이 되고'

 

때로 슬픔은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난 봄과 여름,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슬픔으로 안아야 했다. 그 덕에 자본과 야합한 정치권력의 비인간적 횡포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천민자본주의의 민낯, 그것에 영합한 식기(識妓-지식을 파는 기생, 혹은 識寄-기생하는 지식인)들의 뻔뻔스러운 백마비마의 억지 논리를 참아낼 수 있는 근기도 길렀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일베’와 ‘어버이’ 무리들의 폭거에도 절망하지 않는 저력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그 지극한 슬픔 덕분에.

 

그 슬픔이 진양 장단이나 계면조로 풀어지기도 하고 춤이나 풍물의 신명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북이나 장구의 장단이 독려의 응원가가 되어주고 아쟁이나 해금의 흐느낌이 격려의 박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으로 맺힌 것들을 신명으로 풀어내며 이 풍진 세상의 ‘희망가’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전통음악의 뿌리이자 힘이리라!

 

지난 주말 서울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이렇듯 ‘희망을 되살리는’ 마력을 지닌 우리전통음악 한마당이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스물 셋’의 이름으로 펼쳐졌다. 김무길, 김광숙, 이태백, 안숙선, 김일륜, 동남풍 등 이 시대 최고의 명인들이 모여 한풀이 신명의 씻김굿을 고향을 잃은 서울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출연자 모두 이 지역의 자랑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들!

 

고수는 특별한 연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정성만 갖추면 그 숨길 수 없는 내공이 무감각한 영혼들마저 뒤흔들어버린다. 세월호에,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뻔뻔함에, 굳어져버린 마음들이 거문고, 아쟁, 가야금 산조에 꿈틀거리더니 독감으로 청을 낮춘 안숙선명창의 춘향가 한 대목에 탄성과 환호로 피어났다. 신명의 끝을 보여주겠다! 동남풍의 숨을 멎게 하는 가락은 결국 모든 이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말았다.

 

이 감동의 탄식은 전주다움이 듬뿍 담긴 뒤풀이로 이어졌다. 칭찬과 감사의 인사말이 막걸리 향기와 어우러지면서 서울의 밤은 저물고, 피곤 가득한 뿌듯함 가라앉히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서울 시장과 교육감까지 참여하여 이 지역과의 소통과 교류를 다짐하기도 했으니 슬픔은 기어이 힘이 되고 만 셈이다.

 

그렇게 변방이 중앙을 감동시켰다. 가장자리의 천덕꾸러기 전통이 오늘의 감동을 통해 미래로 우뚝 서고 슬픔의 아픔이 그에 힘입어 감격의 신명으로 승화되는 놀라운 연금술, 이를 마련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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