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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의 꿈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에서 하천 흔적이 발견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가 왕궁리 유적 발굴조사로 밝혀낸 성과다. 공주와 부여 익산을 잇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2010년 이미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되었지만 정식 등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제 중흥의 꿈을 담고 있는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600∼641) 때 조성된 왕궁성(王宮城)이다. 오랫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이 공간은 1989년부터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하나로 연차 발굴이 진행되어 왔다.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지난 2004년, 부여문화재연구소가 300여일에 걸쳐 발굴조사한 왕궁 터와 유물이 공개되면서다. 고대 궁성 관련시설의 대지조성과 공간구획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왕궁리 유적에 역사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궁성의 축조양상이 확인되면서 학계는 그동안 확인된 백제 시대 왕궁의 어느 것보다도 완전한 형태의 궁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실체는 화려했다. 궁성 건물지를 건립하기 위해 기반을 다진 석축과 계단 역할을 하는 월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리한 후원, 뒷간이 있었던 자리까지 세세하게 드러난 현장은 경이로웠다. 기존에 발굴됐던 터의 구체적 확인 외에도 새롭게 드러난 건물지와 유물도 적지 않았다. ‘王宮寺’가 새겨진 명문기와와 중국청자편, 철제솥 등 중요유물이 쏟아졌으며 궁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방지에서 출토된 금세공 유물은 아름답고 정교함으로 마음을 빼앗았다. 백제인들의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미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유물들이었다.

 

궁성의 존재는 오래전에 확인됐지만, 궁성의 내부 구조와 생활공간 등의 흔적이 대대적으로 확인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거기에 더해 올해 왕궁리 유적은 또 하나의 실체를 얻었다.

 

돌아보면 왕궁리 유적 인근에는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 터와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가장 큰 석불을 갖고 있는 석불사가 있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도 왕궁리 유적과 불과 1.3km에 있다. 이 유적들이 놓인 공간의 배치를 들여다보면 익산 왕궁리 일대의 역사적 의미는 더 새로워지고 그만큼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년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백제인들의 꿈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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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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