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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과 중국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자리. 모두발언에 나선 시진핑 주석이 한시 한수를 인용했다. 최치원선생이 지은 ‘범해(泛海)’란 한시였다.

 

중국 난징(南京)시 뤼슈이현의 당나라 시대 원형을 복원한 초대형 7층탑. 이곳에는 ‘최치원 방’이 있다. 그의 시문과 초상을 전시하고 동상과 초상화, ‘계원필경’ 등을 판매한다.

 

양주(揚州)에는 최치원 기념관이 있다. 지난 2007년 양주시가 중국 외교부의 비준을 받아 당나라성 유적지 안에 건립한 것이다. 외국인을 기리는 기념관으로는 첫 번째라고 알려져 있다. 당나라성이 있던 이 터는 수나라 양제의 행궁과 회남절도사의 관아가 있었다. 최치원은 880년부터 884년까지 회남절도사의 종사관(비서격)으로 일했다.

 

양주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다. 당나라 시대 고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는 한중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예부터 경제의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당나라시대에는 장안과 낙양에 이은 제 3의 도시이자 최대 국제무역항으로 꼽혔다.

 

최치원은 이곳에서 명망가,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명문으로 꼽히는 ‘토황소격문’을 비롯한 많은 문장과 한시를 남긴 그를 중국인들은 ‘당송 100대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기념관까지 지어 추앙하는 일은 특별하다. 최치원을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고 있는 역사적 인물인데다 동양의 대문호로 칭송 받을 만큼 빼어났던 문장가에 대한 경외심일 수도 있겠지만 들여다보니 이보다 더 명징한 배경이 보인다. 고운 최치원이 갖고 있는 한중문화교류사에서의 위상이다. 그는 한중문화교류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의 자리에서 한시를 인용하고 양주가 기념관을 건립해 그를 기억하게 하는 중심에는 한중문화교류사에 놓인 그의 족적이 있는 것이다.

 

최치원 초상화가 47년 만에 태인의 무성서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식이야 어쨌든 제자리를 찾았으니 반갑다. 국내에서도 기념관 건립부터 크고 작은 규모의 최치원 기념사업이 부상하고 있다. 전북도 최치원과 인연이 깊다. 태산군수 인연 뿐 아니라 신시도 일대의 설화도 흥미진진하다. 예외 없이 기념사업 추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내세운 전략적 목표가 숨어 있다.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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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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