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10:56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민살풀이의 위기

 

우리의 전통춤인 ‘허튼춤’과 ‘살풀이’는 한국인의 미학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춤으로 꼽힌다. 이 춤의 공통적인 특성은 즉흥성인데 설명을 더하자면 허튼춤은 일정한 형식이나 정해진 순서 없이 자신의 감정과 멋을 넣어 추는 춤이고 살풀이는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이다. 우리의 전통춤은 더러는 소멸되고 더러는 잊혀져 이름만 남은 경우가 많은데 살풀이는 오늘까지 살아남아 널리 알려졌다.

 

굿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살풀이는 교방에서 기생들이 추었던 춤이다. 흰 치마저고리에 쪽을 지고 수건을 들고 추는데 수건의 길이가 지방과 춤꾼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건으로 수많은 선을 그리는 것은 살을 풀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라고도 하고 기방에서 추는 살풀이의 수건놀음은 여인의 한풀이를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살풀이 중에서도 일상적인 미학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는 춤이 있다. 조갑녀 장금도 선생에 의해 우리 지역에서 이어져온 ‘민살풀이’다. 민살풀이는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맨손으로 추는 즉흥춤이다. 예기들을 통해 기방에서 완성됐다고 알려진 민살풀이는 손이 머리 보다 높이 올라가는 법 없이 귀 뒤와 배꼽 근처로만 움직이는데, 멈춰있는 듯 가늘게 움직이는 손과 흰 저고리와 치마의 선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이 슬플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래서 평자들은 이 춤의 생명력을 슬픈 아름다움이라고도 한다.

 

지난 4월 1일, 이 춤을 지켜온 조갑녀 선생이 작고했다. ‘서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고 했을 정도로 빼어난 춤꾼이었던 선생은 결혼과 함께 스스로 무대를 떠났다. 춤꾼으로 이름을 숨기고 산지 수십 년, 그러나 세상은 그의 춤을 다시 무대로 이끌었다. 2007년,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였다. 그의 나이 여든 여섯, 몸조차 가누기 힘들게 보일정도로 마르고 왜소한 노인이 무대에 섰을 때 객석은 숨을 멈추었다. 선생의 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아흔을 앞둔 나이에 조갑녀 선생은 왜 가누기도 어려운 몸을 추스려 다시 무대에 섰을까. 사실 민살풀이는 위기에 처한 춤이다. 조갑녀 장금도 선생 이후 춤의 계승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조갑녀 선생의 민살풀이는 슬하의 두 딸에게 전해졌다고 하니 다행스럽지만 이제는 민살풀이 명인으로 유일하게 남은 장금도 선생도 아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의 전통춤은 옛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춤의 생명이 위태롭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