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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피노마을의 변신

 

전봉준 장군이 공주성을 공략하기 전에 점괘를 보니 ‘계룡산의 경천을 조심하라’는 괘가 나왔다. 계룡산 인근의 경천 땅을 조심하라는 괘로 여기고 이곳의 공략을 주저하다 관군에게 패했다. 그런데 계룡산은 충남뿐 아니라 순창에도 있었다. 점괘는 순창 계룡산 인근 피노리에 살던 김경천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이를 경계하지 못해 체포됐다. 전봉준 장군이 체포된 것을 두고 채집된 구전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동학농민군 최고지도자의 체포를 바라본 당시 민초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순창 피노리와 김경천은 동학농민혁명의 종지부를 찍게 한 반혁명의 역사적 장소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봉준 장군은 태인전투에서 패한 후 관군과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도피 길에 올랐다. 전봉준의 피신 목적지가 처음부터 피노리는 아니었다. 태인 종송리에 숨어 있던 혁명의 동지 김개남과 재기의 뜻을 도모하기 위해 우회 통로로 삼은 곳이 피노리였다. 마침 순창지역에는 동학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그를 안내했던 김경천은 옛부하였다. 그러나 믿었던 부하의 밀고로 붙잡혀 혁명가의 꿈도 함께 막을 내렸다.

 

순창군이 10년 전 피노마을 전봉준 피체지를 복원했다. 전봉준이 붙잡힐 당시의 주막과 초정, 관련 사진과 자료를 갖춘 전시관과 기념비, 농촌 생활 체험관을 세워 역사탐방 체험 관광코스로 만들었다. 당시 기념비 문구를 두고 정읍시가 반발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봉준 장군 피체지’표석과 ‘피체유적비’에 밀고자의 출신지를 정읍 덕천면으로 넣은 것을 두고서다. 정읍지역 사회단체들은 굳이 밀고자의 출신지를 넣고, 그것도 출신지를 강조하려는 듯 본문 고딕체를 쓴 것에 항의하며 비문 철거 등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순창지역 사회단체들은 정읍에 있는 전봉준 장군 허묘에 ‘순창 피노에 살고 있는 김경천이 밀고 했다’는 비문 철회를 요구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순창과 정읍간 밀고자를 놓고 벌인 줄다리기도 이제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순창군이 오는 2018년까지 30억을 투자해 피노마을을 ‘농촌관광 거점마을’로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어두웠던 역사적 장소로 방치하지 않고 오히려 농촌마을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접근 자세가 돋보인다. 혁명의 꿈을 접게 된 곳에서 그 역사를 되새기고, 자신에게 아픈 역사가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원이 될 수 있다면 전봉준 장군도 기꺼이 응원할 것이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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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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