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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불이행죄

 

지난 1964년 3월 13일 미국 뉴욕주 퀸즈 지역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새벽시간에 귀가하던 중 강도를 당했다. 이 여성은 거세게 저항하면서 주위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현장을 지나가던 38명에 달하는 목격자 가운데 경찰에 신고하거나 구조에 나선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결국 이 여성은 강도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다. 1997년 5월 미국 네바다주에서도 카지노클럽 화장실에서 친구가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은 ‘캐시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이후 미국의 30여개 주에선 불구조죄에 대한 법 조항을 도입했다.

 

지난 8월 대전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택시기사를 방치한 채 트렁크에서 본인 짐만 챙겨 떠난 부부승객 소식에 국민들이 경악했었다. 이들 부부는 당시 동남아로 골프여행을 떠나면서 공항버스를 놓칠까 봐 119 등에 구조요청없이 황급히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국민적 분노를 샀다. 지난달 30일에도 서울 동작구에서 택시기사가 의식을 잃으면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다. 하지만 탑승했던 승객은 별다른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고 피해차량 운전자와 행인들이 119에 신고한 뒤 인공호흡을 실시했으나 병원으로 옮기던 중 택시기사는 숨졌다.

 

이 같은 위급 상황에 처한 사람을 방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조 불이행죄’ 입법이 추진된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을 새누리당 박성중 의원(서울 서초을)이 자신의 1호 법안으로 지난달 국회에 발의했다. 찬반 양론이 있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은 착한 사마리아인법 제정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한 ‘착한 사마리아인 법’ 제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위급한 사람을 돕지 않고 지나치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53.8%로, ‘위급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도덕의 영역이기 때문에 법제화해선 안 된다’는 의견(39.1%)보다 높게 나왔다.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러시아 등에선 구조 불이행죄 법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선 구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땐 5년 징역, 또는 7만5000유로의 벌금 규정을 두고 있다. 지난 1997년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사진만 찍어댔던 파파라치들이 체포된 죄목 중 하나도 구조거부죄이었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인정이 메마른 우리 사회에 화재 현장에서 잠든 사람들을 구하다 숨진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는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우리에게 참된 이웃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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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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