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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도끼질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그날 밤. 정권교체의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개표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개표 결과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 문재인 후보와 3.6% 차이의 표를 얻어 박근혜 후보당선 확정이 방송 자막으로 뜨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괴로워했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잊기 위해 술로 몸부림쳤으며 누군가는 망연자실, 울분을 토하는 고통으로 가슴을 쳤다.

 

시인도 그들 중 한명이었다. 이틀 사흘, 꼼짝 하지 않고 날을 보냈다. 해가 뜨는지 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극한의 공포가 쓰나미처럼 덮쳐올 때 빠져드는 정신적 공황상태.’ 말 그대로 ‘패닉’상태였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어 겨우 몸을 추슬러 마당으로 나갔다. 겨울에 쓸 요량으로 갖다 놓은 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틀 동안 도끼질을 해댔다. 눈만 뜨면 나가 허기질 때까지 도끼로 나무를 팼다. 마음의 화를 겨우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도끼질’ 덕분이었다.

 

그제야 일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약속한 하동의 고등학교 특강이 생각났다. 마음도 몸도 얼크러진 상태에서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강연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나오시기 어려우면 학생들을 선생님 댁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강연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1·2학년생 20~30명이 시인의 좁은 앞마당에 모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막막했다. 겨우 시작된 강연, 그러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인은 끝내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어느 순간, 적막감이 시인의 고개를 들게 했다. 아이들은 당황스러웠을법한데도 숙연하게 앉아있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희들이 2년 후면 투표권이 생깁니다. 저희를 위해서 강의를 계속해주세요.” 시인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희망이 없던 나라의 희망, 아이들이었다.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에 살고 있는 박남준시인의 이야기다.

 

지난 12일의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을 보며 시인의 도끼질 이야기를 떠올렸다. 집회 현장을 지켰던 한 사회학자는 ‘시민은 도덕적이고, 무능한 통치자라도 예의를 갖춘다’고 말한다. 안으로 울분을 삭혀 스스로를 풀어내야했던 시인의 도끼질도 그러한 것이었을 게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도끼질’의 결말이 민망해지고 있다. ‘도끼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시민들의 분노를 강력한 힘으로 일깨우고 있다. 광장의 촛불, 광장의 외침이 더 뜨거워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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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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