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04:13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성찰의 시간

실상사 도법스님을 찾아간 그 해, 그 날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였다. 한 해 끄트머리, 새해 아침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위해 찾아간 자리. 도법스님은 2001년 2월 시작한 천일기도를 끝내고 새로운 형태의 평화운동체인 ‘지리산생명결사’를 만들어 ‘생명과 평화를 가꾸고 얻는 일’을 시작한 터였다.

 

스님이 산문을 넘어서지 않고 생명과 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해 기도에 매달리는 동안에도 전쟁은 났고 생명은 파괴되었으며 이전투구, 갈등과 반목은 깊어졌다. ‘무엇을 얻으셨냐’고 물었다. 우문(愚問)이었다.

 

스님은 “기도는 무엇을 추구하던지 일차적으로는 자기 성찰”이라고 이 말했다. 성찰은 밥 먹고 물 마시는 것 같이 해야 하는, 우리 삶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우리 삶의 어떤 것도 성찰을 통해서만 비로소 진짜를 볼 수 있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희망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자기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성찰의 삶을 통해 거품은 걷어내고 환상은 깨고, 참된 가치들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희망이 길이 열리게 된다.”

 

고단하고 분주한 일상에서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스님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단언했다.

 

가장 좋은 방식은 걸음을 생활화하는 것. 묵묵히 걷는 시간, 온몸을 써서 걷게 되면 ‘나의 생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했다. 스님의 조언대로 ‘그런 과정 속에서 자기 소리를 더 충실하게 듣게 되고, 그 들음을 통해서 쓸데없는 거품이 걷히기도 하고 환상이 깨지면서 삶의 참된 가치들이 현실로 작동하게 된다’면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며칠 전 꽤 이름난 식당에 갔다. 예전 같으면 자리가 부족할 점심시간이었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1시간 정도 머무는 동안 몇 개 안되는 테이블도 채 차지 않았다. ‘손님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더니 주인아저씨가 답했다. “나라가 어수선하잖아요. 좀 참아야지요. 좋을 때도 있으면 안 좋을 때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위안이라도 될까 싶어 건넸던 인사말에 돌아온 주인아저씨의 답이 오히려 위안이 됐다. 대한민국의 힘은 이렇게 착한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한해가 가고 있다. ‘성찰을 통해서만 비로소 진짜를 볼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성찰하게 하는 풍경이 적지 않다.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있는 세밑, 우리에게 진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