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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

작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회관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은 ‘장소에 대한 성역화이고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했지만,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적인 것이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24명이 대거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저급한 비하와 성적욕설을 퍼부은 연극 ‘환생경제’에는 도저히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그림을 훼손하고 전시를 중개한 표창원 의원에 대해 새누리당이 국회에 징계안을 제출하고 민주당이 자체 윤리위에 회부하고, 일베충들이 그의 가족까지 공격하는 등의 일련의 행태는 정치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림에 대한 견해는 옹호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뉜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선’을 앞둔 중대한 시점에 이 논란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도 정치적 파장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더욱 옹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더러운 잠’이 작품성 평가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더 관심을 끌고 있는 듯하지만, 여성비하라는 표현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개인 예술가가 그린 ‘더러운 잠’이 공인 중의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국회의원들이 대거 나서서 대통령을 ‘노가리’로 지칭하면서 ‘육시할 놈’ ‘개잡놈’ ‘불알 값도 못하는 놈’ ‘불알을 떼라’ ‘죽일 놈’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는 ‘환생경제’와 비해 더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성적표현에서도 그렇고 여성비하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현재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들은 공격에 맞서는 공격, 보복을 되갚는 보복의 그림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 고삐풀린 폭력이 날뛰는 상황이 오면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편 가르기 감정싸움만 남을 것이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깃발아래 다시 모일 것이고, 이 전투에서 어느 쪽이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라는 장소성과 표현방식에 대한 견해차가 그 빌미가 됐다.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국민의 공감을 떠나서 살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 작품에 대한 논란으로 블랙리스트 작가 20인이 마련한 전시회의 본래 취지가 희석된 듯해서 안타깝다.

 

이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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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lees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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