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명창은 직업이 아니다. 소리 실력의 우월을 가리는 등급을 의미하는 말이다. 판소리 명창이 등장한 것은 1800년대,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전기 팔명창(권삼득, 염계달, 송흥록, 김제철,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방만춘)부터다. 이후 19세기 후기 팔명창과 20세기의 오명창이 활동했지만 일제 강점기동안 우리의 모든 전통문화가 그러했듯이 판소리 역시 단절의 시기를 거쳤다. 현대의 판소리 명창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가 부활시켰다. 이 제도에 의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박녹주 김연수 김여란 정광수 박초월 김소희 정권진 박동진 박봉술 한승호 같은 소리꾼들이다. 문화재로 지정 받기 전이라도 판소리 명창이 되는 또 하나의 통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전주대사습놀이다. 연원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사습놀이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어졌었으나 1975년 현대적 경연대회로 부활했다.
다시 시작된 전주대사습은 신분제 사회의 조선시대와는 달리 산업사회의 특징을 반영했다. 부활 초기는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청중 중심의 경연 재현이었지만 경연 대회 실황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하면서 현장성은 약화되고 방송 위주의 경연장으로 변모했다. 때문에 대사습의 정체성 훼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국악의 대중화를 이어내는 통로가 됐다. 부활된 전주대사습은 국악인들의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우뚝 섰다. 판소리 명창과 국악 각 분야의 명인들을 배출해내는 공인된 자리로 인정받았던 덕분이다.
그런데 전주대사습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대사습을 이끄는 전주대사습보존회의 폐쇄적 조직운영과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관행 때문이다. 사실 대사습은 부정심사와 패거리 담합으로 권위와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책임져야할 주체는 여전히 패거리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원로 국악인들까지 나섰으나 역부족인 모양이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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