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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포템킨

1905년, 러시아는 혼탁한 사회상황과 부패한 권력자들의 횡포로 민중들의 사회적 불만은 극에 달했다. 러일전쟁 이전부터 감지되고 있던 혁명의 기운은 마침내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졌다. 평화적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 군대가 발포하면서 ‘피의 일요일’로 명명된 사건 이후 군중의 폭동은 더 거세져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 와중에 흑해 함대에 속해있던 전함 포템킨 호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수병들에게 배식된 쇠고기에서 구더기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썩은 쇠고기 배식은 예상치 못한 폭동으로 이어졌다. 쇠고기에서 살아 꿈틀대는 구더기를 발견한 수병에게 군의관이 ‘전혀 문제가 없다’며 ‘묻어 있는 구더기를 식초로 닦아내면 될 일 ‘이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백 명의 수병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항의하자 지휘관은 오히려 쇠고기 수프를 먹기를 강요해 거부하는 수병들은 총살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 수병들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권이 없었다. 봉기를 일으켜 전함 포템킨을 장악한 수병들은 마침내 혁명군이 되었다. 이들의 봉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포템킨 호가 정박해있던 오데사 항의 민중들이 포템킨호의 봉기에 용기를 얻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포템킨호의 봉기나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오데사 항 민중들의 봉기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전함 포템킨의 봉기는 사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로 만들어진 <전함 포템킨> 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이름을 알렸다. 러시아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58년 브뤼셀 박람회의 ‘평론가 117명이 뽑은 세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학도들의 교과서가 된 이 영화는 ‘몽타주이론’을 확립해 고전 영화이론의 기술적, 예술적 토대를 구축한 세르게이 감독의 예술적 성과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세르게이 감독의 <전함 포템킨> 을 상영했다. 1925년에 개봉한 이 흑백 무성영화는 오늘의 관객들에게 낯선 영역이었지만 영화의 힘을 새롭게 깨우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사실은 대개가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그래서 <전함 포템킨> 처럼 사실보다 영화가 더 알려진 경우는 흔치 않다. 역사적 사실을 온전히 영화의 힘으로 기록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다는 것. <전함 포템킨> 의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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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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