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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지난 주말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춘계문화탐방의 일환으로 원우들과 함께 세월호가 옮겨진 목포신항을 찾았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나라의 역할 및 책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였다.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동안 느껴왔던 여러가지 궁금증을 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배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목포항의 세월호는 모로 누웠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느 항구에서나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겉모습을 가졌고, 어마어마한 참사를 빚었던 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왜소하게 보였다.

 

길이가 100m가 넘는 배의 크기가 결코 작지는 않은 터이다. 그런데도 특별하다기보다 일상적으로 보인 것은 추모객들의 접근이 허용된 도로에서 세월호가 놓여진 곳까지의 거리가 짧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을 압박하는 긴박감이나 왁자지껄한 대립갈등도 눈에 띄지 않았고, 작업을 위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멀리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동안 언론에서 보고 듣던, 우리가 느끼고 상상했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세월호’라는 이름을 가진 배는 우리의 현실에서 저만치 벗어나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추모객들은 오히려 당황했다. 두런두런 귓속말이 이어졌다. 저렇게 작은 배였나? 왜 3년 동안이나 건지지 못했나? 뭘 숨기려고 했나?

 

세월호의 참사를 실감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탐방객들이 오가는 도로변의 노란 리본과 미수습자 사진이었다. 추모객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걸어둔 수 만, 수 십 만개의 노란 리본들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따사로운 봄바람을 맞고 있었다. 미수습자 9명의 사진과 이름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추모객들의 눈시울은 저절로 뜨거워졌다. 노란 리본의 담벼락은 아픔과 슬픔이 교차하는 파도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북도민들에게 세월호의 의미와 아픔은 남다르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292명이 숨지는 참사를 위도 앞바다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비해 20년전인 지난 93년 10월 10일의 일이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 2주가 지나면 대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힘으로 국민들이 만들어준 대통령 선거다. 국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정부,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미래를 열어가는 정부, 그런 정부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꿈꿔본다. 서해훼리호와 세월호의 슬픔을 또다시 되풀이 할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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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lees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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