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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량사업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코끼리의 마술에 빠져든다. 머릿속에는 코끼리 형상이 떠오르고 코끼리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2004년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의 서민들이 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보수당에 표를 몰아주는지, 그래서 진보세력은 선거에서 번번이 패배하는지를 분석했다. 바로 보수당의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상징이다. 그에 따르면 진보진영은 그동안 보수진영이 선점한 보수주의적 가치의 프레임 속에서 싸웠기 때문에 보수당을 이길 수 없었다. 보수진영 정책의 거짓과 실패를 아무리 공격해도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보수진영의 정책일 뿐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보다도 정체성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보수당이 선점한 프레임을 벗어나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람들은 언어규정적정향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언어는 매우 힘이 세다. ‘세금감면’이라고 하면 국가의 세수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세금구제’라고 하면 많은 국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 DJ정부 시절 대북정책을 놓고 여야가 ‘햇볕정책’과 ‘퍼주기 정책’이라는 프레임으로 겨뤘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요즘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를 놓고 시끄럽다. 재량사업비는 행정 용어가 아니라 소규모 숙원사업 등을 일컫기 위해 언론에서 편의상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재량사업비라는 용어는 시작부터 매우 잘못된 프레임이다. 재량이란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관한 권한이 전적으로 집행부에 있는데도 지방의원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집행한다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출발이 잘못됐기에 결국 지방의원들이 정당한 절차도 없이 예산을 사적으로 집행하고, 리베이트를 받는 등의 말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전북도의회는 더 이상 재량사업비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판단이고 결정이다. 그러나 전북도의회만의 문제로 끝나서는 안된다. 각 시군의회도 앞으로 재량사업비를 더이상 편성하거나 집행해서는 안된다. 재량사업비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용어였다.

 

이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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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lees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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