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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코카'

2015년 7월, 흥미로운 뉴스가 소개됐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볼리비아를 방문하면서 벌인 특별한 이벤트에 관한 것이었다. 교황은 볼리비아를 방문하면서 ‘코카 잎을 씹고 싶으니 준비해 달라’고 볼리비아 정부에 부탁했다. 교황의 독특한 취향쯤으로 생각하면 그뿐이었으나 세계의 언론이 주목한 이유가 있었다. 교황의 부탁에는 ‘볼리비아인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존중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리비아인들에게 ‘성스러운 잎’인 코카는 1천여년 이어져온 대표적인 주농산물이다. 전통적으로 코카를 경작해 생계를 이어왔으니 볼리비아에서 코카농사는 곧 생명을 지키는 일과 같았다. 그러나 코카가 마약을 대표하는 코카인 재료로 쓰이면서 볼리비아는 코카인 주요 공급지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볼리비아의 경제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강력한 규제였다. 게다가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정책에 동조, 국민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코카재배를 억압하는데 앞장섰다. 자연히 코카재배는 위축되고 국가경제는 피폐해졌다. 더 중요한 것은 코카와 함께 무너져 내린 볼리비아 국민들의 자존심이었다. 경제적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볼리비아는 파탄에 빠지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됐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사람이 있었다. 2005년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한 에보 모랄레스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남미 500년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다. 가난한 원주민의 아들로 태어나 코카 재배 농장에서 일했던 그는 20대에 농민들의 권익에 눈 뜨면서 정치인이 됐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사회주의운동당을 이끌게 된 그는 고질적인 경제난과 빈부격차 해소, 코카 재배 억압 반대운동에 나서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 냈다. 2005년 12월 이뤄진 조기 대통령선거에 당선한 그는 취임한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었으며 토착민 전통이 제도화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공동체 구축으로 사회는 변화됐다. 경제는 살아나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가진 나라가 됐다.  

 

<탐욕의 정치를 끝낸 리더십, 에보 모랄레스> 의 저자 스벤 하르텐은 이러한 모랄레스의 정치적 성공의 뿌리를 ‘코카 잎의 수호’였다고 단언한다. 국민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모랄레스의 신념을 이르는 말이다. 국민들의 신뢰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모랄레스는 2009년 재임된 이후 다시 3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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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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