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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여기는 딴 나라 같다

김용택 시인

앞산 산 밑에 농막을 짓고 사는 사촌 동생 복두가 서울에서 가져온 누룽지 가져가라고 전화 왔다. 복두는 나보다 한 살 아래, 초등학교 입학해서 졸업 때까지 같은 반이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몇 해 전 앞산 밭에 농막을 짓고 이따금 와서 기거한다. 밤이 되어 앞산 밑 강 언덕에 불이 켜지면 산이 눈을 뜨는 것 같다. 이따금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크게 틀어 놓는다.

아침밥 먹었는데, 앞집에서 복국 끓여 놓았다고 먹으러 오란다. 복국 먹고 있는데, 복두가 누룽지 가져가라고 또 전화한다. 강을 건너갔다. 눈이 날린다. 눈발이 몇 개 얼굴에 차다. 검정비닐 봉지에 든 누룽지를 들고 타박타박 강을 건너왔다. 오리들이 강에서 놀고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며칠 사이에 청둥오리들이 많이도 불어났다. 금 새 100마리도 더 떼를 지어 하루 종일 마을 앞 강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 바위 위에 앉아 머리를 날개 위에 꼬아 얹어 놓고 한 발로 서서 쉰다. 오리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강물 속에 처박고 궁댕이와 노란 발을 허공 속에 버둥거리는 모습은 매우 웃기고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 오리는 힘들겠지만, 나는 그렇다. 강물 속에는 봄여름 가을까지 자란 다슬기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오리는 다슬기를 까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책을 보고 있는데( 나는 요즘 유발 하라리의 ‘21세기 스물한 가지 제언’을 읽고 ‘넥서스’를 읽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저서인 ‘사피엔스’와 ‘호모테우스’ 다시 읽어야겠다고 벼른다. )앞집에서 또 방어 회 먹자고 해서 양껏 배부르게 먹었다.

이틀 전에 김장 마늘을 깠다. 오늘은 파를 다듬었다. 해는 지고 어두운데 딸이 순창 읍내로 치킨 사러 가자고 한다. 날이 추웠다. 달리는 차 창에 눈발이 날아왔다. 닭집 앞에 차를 세우고 치킨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닭집 홀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퇴근 후 사람들이 한가하게 술을 마시는 풍경을 정말 오랫만에 보았다. 함께 평화롭고 서로 다정하고 여럿이 정다워 보인다. 읍내, 그러면 어쩐지 정답다. 정다운 모습들을 치킨이 나올 때까지 차 안에서 바라보았다. 무어라 심각하게 말하고, 또 허리를 뒤로 제 끼고 웃고, 손뼉을 치며 모두 웃는다. 삶의 내일이 불안하고, 또 기다려진다. 큰 도시 삶같이 어마어마한 희망은 없을 것 같은 간소한 읍내의 하루가 이렇게 눈발 속에 잠겨 있다. 집이 있고, 집에는 식구들이 기다린다. 그것 또한 삶의, 하루의 안심이다. 닭집 여자 주인이 닭을 가지고 온다. 얼른 차장을 열고 받았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치킨집 여자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어머! 시인, 그분 아니세요” 한다. 내가 네 맞다, 고 했다. 좋아하셨다. 딸이 운전하면서, 아빠가 그분이구나. 했다. 웃었다. 눈발이 아까보다 세차졌다.

순창에서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우리 모두 가난하고 가난하였다. 자취하는 나를 도와준 친구가 둘 있었다. 종해와 운행이다. 종해는 어머니와 누님하고 살았다. 추운 겨울 자기 집에 데려가 이불 속에 묻어 놓은 따듯한 밥을 주었고, 운행이는 시계 집 아들이었는데, 중학교 네네, 소풍 때마다 도시락을 싸 왔다. 운행이가 어느 날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갔다. 고운 얼굴의 운행이 어머님이 나더러 “니가, 용택이구나,” 하며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나의 생활권은 지금도 순창이다. 시장을 보러, 마트에 무엇인가를 사러, 가고, 찻집도, 외식도 병원도 순창으로 간다. 내 삶의 일상은 모두 순창으로 해결된다. 집에 일이 없는 날은 아내는 책을 보러 순창에 간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어쩐지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스친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살며 눈에 익었던 그 이들의 자손이거나, 아니면 어쩌다 스친 그 때 읍내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을 닮은 후손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이 작은 고을은 일상은 딴 나라 같다. 닭튀김은 맛이었다. 격동의 1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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