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을 중심으로 축조한 역사적인 산성이다. 인조 2년(1624)에 현 위치에 건립했다. 평상시에는 광주 지방관의 집무실로 사용하였고, 전란 때는 임금과 조정의 피난처이자 항쟁의 지휘부가 되었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파천한 47일간의 생존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고립무원의 성, 아비규환의 전장(戰場)에 무엇이 있었는지 수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은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무엇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팩션(Faction) 사극은 비틀어야 제맛이 나는데…….
소설은 오래된 병풍을 잇댄 느낌이 든다. 구성(40장)이 그렇고, 언어에서 연상되는 빛바램과 여백이 그렇다. 예지력 있는 첫 문장은 유려하고 심오하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몽진 떠나는 어가행렬과 폐허가 된 궁궐로 돌아와 눈물을 닦는 임금 모습이 디졸브 되는 글귀는 하늘이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글의 끝은 바람에 돛폭이 잔뜩 부푼 배가 송파강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 첫 장면은 나루터다. 꽁꽁 얼어붙어 배가 꼼짝할 수 없는 강, 사람들은 얼음 위를 걸어서 건넌다. 끝 장면도 나루터다. 해빙되어 나룻배가 마음껏 오갈 수 있는 나루터. 주변은 삼밭〔麻田〕이었다.
소설과 영화는 공히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를 띠고 있다. 그 안에 47일의 고초가 빼곡히 들어있다. 영화를 두드려보자.
전편을 관통하는 은유는 먼지다. “전하, 지금 성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이조판서 최명길이 울음을 참으며 쏟아내는 말이다.
다음은 주화파와 척화파 간 첨예한 대립이다. 주화파 최명길이 간언한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이에 맞서는 척화파 김상헌의 강변이다. “전하!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입니다.” 틈을 헤치고 인조의 졸렬한 목소리가 울퉁불퉁 튀어나온다. “나는 살고자 한다.”
클라이맥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다.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그 현장을 목도(目睹)하는 것. 절 한번하고, 이마를 세 번 땅에 두드리기를 3회. 청나라 역관의 명령에 따라 임금의 이마가 땅을 찧는다. 온 나라가 임금 따라 울었다.
백성의 감정과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다. 가마니 둘러쓴 성첩 위 병사, 대장장이, 점쟁이, 무당, 장돌뱅이, 기와장이, 옹기장이, 농부……. 이들 삶의 모든 무늬와 질감은 그저 노동하는 근육 속에 각인되었다. 가느다란 울부짖음은 먼지에 눌려 들리지 않는다. 먹을 것 없을 때, 홍이포 쏟아질 때 그들의 위장과 폐부는 제일 먼저, 가장 오래 오그라들었다.
병자호란 후 조선의 항복을 기록한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현재 이 비석은 삼전도가 있던 자리, 서울 잠실 석촌호숫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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