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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공공극장은 누구의 공간인가

하형래 극단 새로고침 프로듀서

공공극장은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얼마 전 한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그 강의에서는 공공극장이 시민과 함께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해, 독일의 사례를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공공극장에서 그동안 예술가는 작품을 올리고 시민은 그것을 관람하는 공간으로만 이해되어 온 것은 아닐까.

완성된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그것을 감상한다. 여기에 대관 운영과 수익이 가능한 기획공연이 더해지고, 공간에 여유가 있을 때 체험 프로그램이나 전시가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은 공공극장의 운영에서 경험한 익숙한 구조다. 하지만 문득 질문이 생긴다. 이것이 과연 공공극장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에 충분히 부합하는 방식이었을까. 우리는 공공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머무르고, 함께 만들어가며,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 공연을 ‘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무대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하는 공간. 공공극장은 어쩌면 모든 아이들에게 문턱없이 열려있는 놀이터와 같이 모든 시민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는 무대예술의 놀이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 많은 공공극장은 공연과 행사의 대관 관리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대관 공연이 완성도 높게 올라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관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운영이 반복될수록 공공극장은 점점 더 시민들에게 소비의 공간으로만 고정되고 있지 않았을까. 시민은 관객으로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그 공간이 자유로운 공공의 장소로 인식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시민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공공극장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시민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을 전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대관이라는 문턱조차 넘지 못하거나 관심 밖이기에 대부분 공공극장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정작 공공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이 시민의 창작과 참여를 충분히 품고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의 여러 사례에서는 공공극장이 보다 확장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공연을 올리는 공간을 넘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창작 과정에 개입하며,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공존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있다. 직업예술과 시민예술이 같은 공간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이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공공극장이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곳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문화 플랫폼이라면 어떨까

직업예술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시민예술은 그 옆에서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만들어낸다. 두 영역이 같은 공간 안에서 만날 때, 극장은 결과를 보여주는 장소를 넘어 관계와 과정이 축적되는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공간을 열어두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영 방식의 변화, 프로그램 구조의 재설계,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을 관객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단순하게 공연 관람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그 이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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