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 시인 추모 시회 ‘보리누름에 산들바람’ 30일 김제서 열려 "현대문학사 빼놓을 수 없는 큰어른”…정양 기념사업회 구성 제안 나와
정양 시인(1942~2025.5.31)이 생전 그토록 사랑했던 대지와 나무 아래,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다시 모였다.
지난 30일 오전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 816-1 은행나무 앞에서 정양 시인 추모 시회 ‘보리누름에 산들바람’이 열렸다. 전북작가회의와 전북문인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에는 유족과 신흥고‧우석대 제자들, 그리고 평소 시인과 문학적‧인간적 교류를 나눴던 문인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시회는 묵념과 눈물 대신 고인이 살아생전 소망했던 다정한 온기로 가득했다. 전북작가회의 정동철 회장은 “시회는 본래 한량들이 모여 시를 쓰고 낭송하며 노는 자리”라며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슬픈 표정만 짓기 보다는 선생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대로 재밌게 어우러지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격식 없는 인사말을 건넸다.
그의 말처럼 단상에 오른 문인들은 저마다 가슴에 품어둔 정양 시인의 호방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꺼내놓았다. 고인을 친형처럼 따랐다는 소재호 시인은 “정양 선생님은 이미 우리에게 전설이 되신 분”이라며 “생전에 ‘양이 형’ 하며 뒤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선한다”라고 회상했다. 뒤이어 이병천 소설가는 정양 시인의 시 세계와 삶을 주변에 그늘을 내어주는 ‘산그늘’에 비유하며 스승이자 선배였던 고인을 회고했다.
단순한 회상을 넘어 고인의 문학적 업적을 체계적으로 계승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도 나왔다. 한국작가회의 강형철 이사장은 “현대문학사에서 정양 선생님을 빼놓고서는 인간 날 것 그대로의 삶에 기초한 시, 대지 자체와 맞닿아 있는 시를 쓰는 분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짚으며 “안타까운 마음에만 머물지 말고 고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정양 기념사업회’ 구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시간 가량 진행된 시회는 고인이 남긴 시편과 그를 향한 마음으로 채워졌다. 장현우 시인이 정양 시인의 시 ‘내 살던 뒤 안에’를 읊었고, 김유순 시인과 박태건 시인이 각각 정양 시인에게 바치는 헌시를 차례로 낭송했다. 시회는 유족 대표인 자녀 정범 씨의 감사 인사와 이병초 시인의 재회 인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슬픔 대신 소박한 어우러짐을 소망했던 시인의 뜻에 따라 이날 마현리 은행나무 아래에는 눈물 대신 시구와 다정한 온기가 자리했다. 청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누름의 계절, 대지의 시인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들판에 남긴 가장 ‘정양’다운 추모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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