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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주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김신재씨

사단법인 전주생활협동조합(아이코프전주생협) 김신재 이사장(39·전주시 우아동).생협운영을 총괄하는 이사장이 된지 올해로 3년째.한·미쇠고기 협상 이후 그와 전주생협 조합원들이 바빠졌다. 시위 참여하랴, 기자회견 하랴, 거리에서 전단 나눠주랴 그리고 최근엔 공정무역 커피 마시기에 나서기까지.그가 친환경, 건강한 식탁에 당초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들(초등4) 딸(초등1) 낳은 뒤부터. 둘 다 아토피를 앓고, 특히 딸이 아토피가 심해 마음고생을 한 끝에 먹을거리, 환경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안전한 밥상과 먹을거리를 찾던 중 최민희씨가 쓴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책의 뒷부분에 소개된 '생협'에 필(feel)이 꽂혔다. 그때부터 전주 한울생협 문을 두드려 회원으로 가입했고 2~3년 후인 2001년부터 전주생협 회원으로 가입했다.'윤리적 소비'를 꿈꾸는 아이코프생협에 출자금을 내고, 또 매월 2만원씩의 회비를 내면서 조합에 대한 책임감도 나눈다. 김 이사장처럼 아토피를 앓는 자녀들의 건강 때문에 생협을 찾은 엄마들, 30대 주부들이 조합원의 주류를 이룬다.일반물품보다 20%정도 비싼 까닭에 자녀가 조금 좋아지면 일반물품을 섞어 사용했다가 특히 과자를 먹었다가 또다시 아토피로 고생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이제 생협물품 아니면 불안감을 가지게 됐다. 생협물품이 100%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생협에서 나온 과자를 먹으면 괜찮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자녀 내가족'의 범위를 넘어 이웃에도 권하게 됐다. 그는 어느덧 식품에 대해서 강의하고, 성명서 낭독하고, 캠페인, 기자회견에 참여하게 되고 자신뿐 아니라 주부회원들 모두 활동가가 됐다.처음,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지킨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생협에 가담한 그는, 생협의 안전한 식탁운동이 농업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으면서 농민운동, 식량주권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기에 최근 GMO(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수입하는 것에 심사가 틀어진다. 우리농업이 살아야 안전한 먹을거리가 보장된다는 신념아래 소비자로서 우리농산물을 열심히 소비하는 일로 우리농업을 지키는 일을 거들고 있다.전국 64개 조합이 있으며 전북지역에는 전주생협과 익산솜리생협, 남원생협이 조직돼 있다. 생협 조합원들이 마을모임을 통해 도농교류, 환경공부도 한다. 환경수세미를 뜨고 황토염색을 하고 고구마캐기 딸기따기 벌꿀캠프 오디따기에 풍년기원 가을걷이 행사 등.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로 공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농촌을 살리고 죽어가는 땅과 생태계를 살리는, 건강한 생활이 결국 신뢰하며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 건강한 사회를 실현해나가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또 홍보위원회, 식품안전위원회, 물품위원회, 급식위원회 등 각 위원회에서 각자의 활동을 하지만, 결국 조합원들은 '내가 사먹는 물품을 내가 선정'하는 즐거움을 누린다.친환경,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생협물품도 800~900여 가지로 다양해지고, 조합원이 520명에 이를 정도로 확대됐다. 김 이사장을 비롯한 생협 조합원들은 최근의 광우병 파동만 해도 몇년전 생협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으며, 시민들이 생활속의 문제들에 민감한 때가 왔다고 판단한다.김 이사장은 생협을 통해 가정내 안전한 식탁이 어느 정도 보장된 지금, 외식의 안전성도 지킬 계획이다. 우리밀로 만드는 빵과 과자, 친환경 유기농식품 등을 판매하는 자연드림 베이커리를 지난 3월 전주에서 연데 이어 조만간 우리밀을 이용한 자장면 등이나 채식뷔페 식당을 열 예정이다. 우리밀 자급률을 현재의 0.2%에서 3%까지 끌어올릴 야심만만한 플랜(?) 중 하나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1 23:02

[여성] 증언으로 듣는 '전북의 5·18과 여성'

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 93명 회원 중 여성 회원은 극소수.전북대 출신의 김성숙 문희선 조혜경(전주 거주) 송혜경(광주 거주) 김혜숙 이유숙 서성길(경기도)씨와 구속부상자 회원 양윤신(전주대, 진안청소년집 관장) 김은경(익산중앙교회 목사)씨 등이 고작.1980년 전주의 5월. 전주 전북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나?그 때 여학생은 여성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었을까?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사명감에 현실로 뛰어들었던 이들. 암울한 탄압속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민주화의 그날을 위해 수배, 투옥을 감수했던 학생운동의 고민과 투쟁들. 이들에게 5·18은 28년이 지난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80년대 초중반까지 민주화운동의 파편을 기록하여 보관하고 전파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을뿐 아니라, 그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은 모든 기록을 소각하고, 심지어는 본인의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버리는 가혹한 삶을 강요당했기에 기억조차 희미한 그날들. 지난 17일 민중항쟁 최초의 희생자 이세종열사 제28주기 추모식에서 전북대 출신으로 5·18새벽 학생회관 집회에 참여했던 김성숙, 문희선, 조혜경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북의 5·18과 여성'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여성만 구별해서 말하는 것이 어줍잖다는 이들. 그러나 '그때 그당시' 여성들의 활동이 조망되지 않은데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79년 전북지역에서 대학이 가장 빨리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나섰다. 80년 4월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총학생회가 부활되고 각 대학들의 투쟁들이 본격화된다. 5월2일 전북대가 전국 최초의 가두진출을 시도했다. 구 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여 대규모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5월15일 시민을 포함한 약 2만명이 전주역 광장에 모였다. 이때 전북대는 이미 4월부터 계엄법 위반으로 수배된 박종훈, 최인규 등의 복적생들과 시위의 조직자인 이광철 김형근 김중길 이승희 배현식 등 수십명이 학생회관에 농성을 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이 농성장은 민주캠프였다. 이곳서 시위를 조직할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시민들에게 국내의 정치상황과 민주화 참여를 호소하는 유인물을 제작하여 직접 배포 역할도 담당했다. 식사는 학생들이 모은 쌀과 반찬으로 해결했고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공동체였다. 17일 철야농성이 진행되고 있던 1층 학생회관과 2층 교수회의실, 현재 대학방송국 자리인 이곳에서 40여명의 학생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18일 새벽 0시 계엄포고령이 확대, 제7공수 31연대 공수부대원이 4대의 트럭에 나뉘어 타고 학생회관을 포위하고 전원을 차단한 가운데 1층부터 토끼몰이 하듯 뒤지기 시작했다. 착검을 한 상태로 총을 등뒤에 메고 진압봉을 들고 닥치는대로 학생들을 후려치며 쓰러뜨리고 군화발로 짓밟으며 수색, 포승줄에 묶여져 트럭으로 던져졌다. 일부는 훈방됐고 학년이 높거나 주동자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35사단을 거쳐 광주 상무대로 이첩됐다.(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가 발간준비 중인 '기록, 1980년 5월 그 뜨거운 날들의 투쟁' 기록에서)"여성, 남성의 역할 구분이 없었어요. 전북대학생의 여학생 비율이 3분의 1, 4분의 1 정도였어요. 여학생회가 구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한다는 것이 분위기상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집이 전북대 근처여서 마음 편하게 늦게까지 시위에 참여했던 김성숙(국어국문학과 79학번, 논술학원 운영) 씨는 학생회관에서 지냈던 날들의 한끼 한끼가 우여곡절 끝에 넘어갔다고 기억했다. 김 씨와 5·18의 인연은 어느날 학생회관 주방을 들여다본 것이 탈(?). 농성하면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취사 인원이 적고 특별히 당번을 정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덜컥 밥담당을 자처한 것. 김치도 인근 교회에서 담아다 준 것으로 기억한 그는, 5월17일 밤과 18일 아침밥 걱정을 하던 차에 '군인이 온다'는 말 한마디만 생생하게 기억날 뿐 13일 이전의 장면은 몇 컷만 떠오릅니다.같이 밤을 새웠던 애와 얼굴을 마주쳐도 모른척, 엄마한테도 두려워서 5·18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는 그는, 20년 뒤 보상문제로 그때 얼굴들을 다시 보게 됐다."잡혔을 때는 너무 두렵고 긴장해서 맞아도 아프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그리고 총에 칼을 꽂고 들어온 계엄군 눈에 비친 방의 모습이 오합지졸일 것이라는 생각, 순간 '민주주의 회복' 등 나라살리는 거창한 구호 외치는 것이 초라하게 생각됐다는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같이 있었던 여학생 7명(조혜경 송혜경 김혜숙 이유숙 문희선 서성길)은 35사단으로 끌려갔고 다음 경찰서에서 10일, 헌병대 감방에서 2주정도 머물다 안기부에서 각서를 쓴 다음에야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조직범이 아니기에 이 정도로 했다고 들었다.당시 맨앞에 앉아있던 문희선(사학과 78학번)씨는 계엄군이 내리치는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는 바람에 다른 여학생보다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컸다. 피가 얼굴을 타고 끝없이 흘러내려도 두려움에 떨기만 했던 문 씨. 상처를 더러운 수건으로 묶는 것이 다였으며, 경찰서에 옮겨져서야 치료를 받았던 그는, 후유증은 문 씨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그 때 상처가 워낙 커서 5월만 되면 답답하고 숨이 막힙니다. 많이 우울합니다."수업 끝나면 학생회관을 찾아 시위에 참여했던 조혜경(수학과 79학번)씨는 계엄군이 들어오던 현장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이세종과 같이 35사단에 갔다는 것 때문에 이세종 열사 사망에 관한 최후 진술서를 써야 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했기에 적은 수의 여학생들끼리도 농성장에서 얼굴만 익혔다가 나중에 최후진술서 쓰면서 이름을 알았을 정도로, 아는 것이 두려운 시절이었다. 누가 농성장에 오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도 개인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 참여했던 그는, 그때의 충격이 워낙 커서 삶의 근거가 흔들렸지만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1 23:02

[여성의 힘 2050] 수다? 秀다!…밥상이 불안하다

"불안하죠. 사람들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가 먹을 게 없다는 거예요. 당장 학교 급식도 닭고기 끊기고, 쇠고기 끊기고…. 영양사들은 급식 메뉴 짜기도 힘들다고 하더군요.""쇠고기 닭고기는 먹을 수 없고, 돼지고기집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삼겹살은 1000원이나 올랐더라고요. 그래도 정육점 가면 쇠고기 썰었던 칼로 돼지고기 썰어서 팔텐데, 교차감염도 걱정되잖아요. 이젠 풀만 뜯어먹고 살아야 겠어요.""쇠고기는 우리 나라가 최고 시장이죠. 발톱 빼고는 다 먹잖아요. 왜 대책없이 개방부터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 경제 살리라고 대통령 뽑아줬지, 누가 미국 경제 살리라고 했나요?"고병원성 조류인풀루엔자(AI)에, 광우병, 유전자변형 콩과 옥수수까지…. 먹을 게 없다.먹거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밥상을 책임지는 주부들 관심이 온통 가족들 건강에 쏠리고 있다. 주부들로 구성된 전북일보 여성객원기자들 역시 마찬가지. 수다를 시작하자 마자 커진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에요. 전부 급식이잖아요. 학생식당이나 단체급식이나, 안쓴다고는 하지만 알 수 없잖아요. 학생, 군인이 제일 불쌍해요. 이제 우리 아이도 도시락 싸주려고요."객원기자들은 "요즘에는 급식에 쇠고기나 닭고기가 올라오면 아이들이 먼저 항의한다"며 "도시락 싸가지고 가는 애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애들 성적 올리려면 학원 보낼 게 아니라 먹을 것부터 잘 골라 먹어야 한다"며 "교육정보를 공유하던 엄마들이 이제는 안전한 먹거리와 관련된 정보를 나눈다"고 덧붙였다."축산농가들도 걱정되더라고요. AI 보상금이 나와도 그동안 외상으로 쓴 사료값때문에 다 가압류 들어간다고 해요.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객원기자들은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관련 업체들의 매출도 감소하고 있다며 나라 경제 전체가 걱정된다고 했다."저는 생협(친환경식품 직거래 위한 '생활협동조합' 줄임말)을 이용해요. 그동안 생협을 이용하면서 약간 비싸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먹거리 문제가 계속 터지다 보니까 잘 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막상 계산을 해보면 생협은 물가변동이 1년 내내 거의 없어서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에요."식탁에는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다. 생협을 이용하고 있는 객원기자는 "생협은 물건이 동이 날 정도로 많이 팔리고 있다"며 "특히 육류만큼은 생협에서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객원기자는 "우리 동네 유기농매장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가 쇠고기 수입과 함께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우리나라에도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한우가 있다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먹거리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전 국가적으로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아요."객원기자들은 "검증 강화나 원산지 표기 확대 조치 등 관련 대책을 내놔도 국민들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며 "처음부터 불신을 심어줬기 때문에 정부에서 계속 괜찮다고 해도 믿음이 안간다"고 말했다.

  • 여성·생활
  • 도휘정
  • 2008.05.19 23:02

출산ㆍ육아 퇴직여성 재취업 지원 강화

출산, 육아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취업지원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여성부는 '경력 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이 1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취업지원사업을 노동부와 협력해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경력 단절 여성이란 임신, 출산, 육아 또는 가족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상황 등으로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는이들을 뜻한다.이들을 위한 경제활동 촉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종합시책을 세우고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여성부는 이를 위해 경력 단절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정기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여성부는 노동부와 함께 경력 단절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유망 직종을 선종해 그 직종에 여성이 취업하도록 지원할 수 있으며, 상담과 취업 및 복지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력 단절 여성 지원센터'를 지정, 운영할 수 있다.여성부는 "우리나라 상당수 여성은 가사와 육아 부담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고학력여성의 경우 재취업을 포기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경제활동 촉진법으로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경력 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은 올해 1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2006년 현재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0.8%보다 낮다.

  • 여성·생활
  • 연합
  • 2008.05.16 23:02

[여성] "성매매·성폭력방지 법제화 보람"

"진보적인 여성단체가 없었던 때에 개별 소모임 여성단체 탄생도 힘들 때, 여성단체연합으로 연대하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여연이 이 지역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관에서 여성정책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사단법인 전북여성단체연합' 초대 상임대표이었던 이 대표는, 여연이 지역 리더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신했다. 기획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문민정부 들어서부터 관의 파트너로서 협력을 해왔으며, 이는 성주류화 정책의 주도적인 흐름 속에서 여성정책이 계속 부각되던 시기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이 대표는 또 여연 20년 역사는 여성의식을 높이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활동의 중심에 있었다고 표현하고,우리지역에서 성폭력방지법과 성매매특별법의 두 가지 여성관련 큰 법을 만들어내는데 여연이 온상지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남원지역에서 발생한 김부남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예방치료센터가 전국 최초로 설립되고 성폭력방지법을 이끌어냈으며, 군산 개복동 화재사건을 계기로 성매매특별법을 도출해낸 것. 단순 화재 사건으로 넘어가려 한 것을 여연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성매매여성 인권문제를 사회적 인식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이강실 대표가 법과 제도를 제정하는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면 저는 이를 내면화하고 완성 정착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분권화로 인한 여성정치, 평등한 의회 등 여성정책에 신경 쓰고 의회모니터링을 시도했습니다. 선거 국면에서 후보를 추천하기도 했지요."심야에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러 다닌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김 대표는, 여연의 큰 공으로 군산 대명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을 통해 쉼터와 인권지원센터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주에 설립된 점을 꼽았다.저출산과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전라북도에서 이주여성문제를 조명하는 등 여성의 삶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문화제' 형식으로 대중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김 대표는 여연이 정책능력 면에서, 그리고 관의 여성정책 개발 면에서는 탁월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 내용은 아쉬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 예로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를 만드는 전제하에 전북발전연구원으로 통합을 양보했던 전북여성발전연구원의 경우 여성정책연구소로 구조화하면서 내용이 달라진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박영숙 현 대표는 신 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속에서 빈곤과 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으로 나타나고 비정규직과 여성농민 등 여성인권이 후퇴하고 있는데도 현 정부들어 여성정책이 실종되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면서, 여연이 과거 독재에 맞서 싸웠던 것처럼 이제 반 여성인권에 맞서 강건하게 싸워야 할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훈련된 인력이 부족하고 재정에 어려움이 큰 실정에서 전북의 경제력, 여성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이 대표와 김 대표는 여연이 의식있는 여성들을 결집시키는 모체, 현장활동 여성리더들을 길러낸 주체인 점을 동감하면서도, 여연이 젠더관점의 일에 치우쳐왔다면서 통일문제 민족문제 한반도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면서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강실 목사(49·전주 고백교회 부목사)는 88년 1월 전북민주여성회(전북여성단체연합의 전신) 출범 당시부터 참여, 초대 부회장을 맡았다. 1998년 사단법인 전북여성단체연합(여연)으로 재출범하면서 상임대표를 맡아 2005년 1월까지 성매매방지법 등 여성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현재 전북진보연대준비위원장, 우리겨레하나되기전북본부 상임대표, 성매매인권지원센터 대표이사.※김은경 목사(53·익산 중앙교회 담임목사)는 광주YWCA 간사 등을 지냈으며 93년 익산으로 거주지를 옮겨 익산YWCA 창립멤버이자 익산여성의 전화에서 상담활동을 했다. 성폭력예방치료센터에서 성과인권위원회 활동을 하고, 여연 평화통일위원장, 성매매 부설 쉼터 소장 등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여연 상임대표를 지냈다. 현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전북지부준비위원장, 전북이주여성 쉼터 소장.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14 23:02

[여성] "철저한 예절교육, 회초리도 들었죠"

남편은 사업에 실패하고 전주 집을 팔고 '땅은 안속인다'며 방죽안마을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야간에 동네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땅이 진 동네였어요. 다들 못살아서 좀도리쌀을 한집에 모아주곤 했습니다. 3000평 땅에서 복숭아 배 사과 과수원을 하고, 담배농사 수박농사 무농사 안해본 것 없이 다 해봤지요. 두 아들과 딸도 부모가 일하면 나와서 일하고, 토·일요일에도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큰애는 자전거를 타고 아리랑고개 넘어 화장터 지나서 학교를 다녀야 했지요.남편이 엄하고 무섭게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아이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여름방학 때면 완주 고산이나 진안 죽도 등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족캠핑을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밥 해먹고 친구같이 대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동네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보면 또 인사하고 10번 보면 10번 인사한다고 칭찬을 받곤 했지요.저는 남편에 비하면 느슨한 편이지만,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가지러 가는 동안, 가지고 오는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거죠. 종아리에 피가 날 정도로 때리고 부둥켜안고 운 적도 많습니다.아들 둘다 글씨도 모르는데 여섯살에 학교를 보냈어요. 욕심을 냈죠. 청강생으로 보냈는데 숙제를 무얼 냈는지도 몰라서 애가 오면 앞집에 가서 알아와 저녁밥 먹은 다음 집에서 혼자 가르쳤지요. 큰애를 그렇게 하고 나니까 둘째는 공부하라고 닥달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더군요.막내 때문에 1년동안 속상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거든요. 차마 당구장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고 형이 가서 데리고 나오고 그랬는데, 재수해서 대학 들어가고 지금은 회사원으로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무척 속상해도 너무 다그치지 않고 믿어준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지금도 자녀들과 손자녀들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방석 하나 들이는 것, 신발 잘 놓는 것에서부터 예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순화되지요.최정자 씨는 47년생으로 79년 전주시 호성동의 방죽안마을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아 방죽가에 콩을 심어서 부녀회원들의 재정에 도움을 주었으며, 염소 새끼를 길러 동네 잘살기 운동을 이끌어나가기도 했다. 농협의 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들의 모임 회장으로서 전주시여성단체협의회장과 전북여성단체협의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상담사 요리사 전래놀이지도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고 가야금, 장구, 민요, 살풀이(고전무용) 등을 취미로 배웠으며, 올해부터 전주 금암노인복지회관에서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다. 예절교육에 심취해 있으며 대학에서 아동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 전북여성단체협의회 특별사업위원회 위원.

  • 여성·생활
  • 전북일보
  • 2008.05.14 23:02

[여성] 창립 20주년 맞은 '전북여성단체연합'의 발자취

남녀평등, 여성복지, 민주 통일사회 실현, 여성운동단체간의 협력과 조직적 교류를 도모해온 전북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박영숙, 공동대표 이윤애 조선희)이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11개 회원단체와 2개 준회원단체, 2개의 참관단체를 둔 전북지역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전북여성단체연합은 20주년을 맞아 여연을 후원하는 '300인이 만드는 평등평화의 밤'을 23일 저녁 7시부터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과 놀이마당에서 펼친다.후원이사회(회장 송경숙)가 주관해서 여는 이날 행사는, '평등 평화 생명을 만들어나가는 퍼져라∼성평등!'을 주제로 전주대 댄스동아리 U.C.D.C.의 공연에 이어 노래로 찾아가는 스무살 여성연합 이야기, 지역자원과 여성을 연계하는 성평등 나눔협약, 평등운동 길벗과 평생 동행인에 대한 감사패 나눔 그리고 가수 동물원 초청 공연이 있다.▲전북여성단체연합 역사1988년 전북민주여성회로 출발, 1∼3기 여성학교를 통한 여성교육과 모성보호 및 참민주실현을 위한 대책위 활동과 김부남사건공동대책위 활동으로 성폭력을 사회이슈화 했다.1991∼1992년 전북지역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소모임과 여성단체가 태동했다. 지역 여성단체들간의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꽃을 피우면서 성폭력예방치료센터가 건립되는 토대를 만들었다.1993년 3월 전북여성운동연합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여성관련 법 개·제정 운동에 주력, 가족법 영유아보육법 남녀고용평등법 및 근로기준법 그리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결실을 맺었다. 이밖에 쌀수입 저지를 위한 여성단체 공동대책위를 꾸리는 등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여성운동의 중요성을 인식케 했다. 1998년 11월 사단법인 설립 및 전북여성단체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부설 여성실업극복지원센터 문을 열었다(2000년 폐소). IMF로 인한 실직여성 가장들을 대상으로 겨울나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난한 여성' 지원정책을 수립했다.또한 2000년 전북총선시민연대 활동과 양성평등 열린가족문화만들기 운동을 진행했다. 특히 군산 매매춘지역인 대명동 화재참사대책위 활동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사회에 알리면서 성매매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대안을 제기, 2004년 9월 성매매방지법 시행에 이르기까지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성과를 가져왔다.전북여연은 활동내용을 확장하면서 부설로 2001년 전북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를, 2002년 전북성매매여성현장상담센터를, 2003년 성매매여성 쉼터 '민들레'를 개소했으며, 2005년 이들 3개 부설을 통합, 독립법인체인 여성인권지원센터를 설립했다. 2005년 부설로 성평등교육(문화)센터를 개소했다.전북도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예산을 강화, 국정감시 활동 등을 통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역여성운동을 펼쳐나가면서 지난해에는 지방의회 성예산분석 및 모니터활동, 통일을 위한 새싹걸음 어린이 통일인형극 순회공연, 성평등 문화확산을 위한 연구 및 다양한 활동, 민주적 지역사회만들기 위한 연대활동 등을 벌였다.전북여연은 전북지역 여성의 권익 실현에 크게 기여했으며 여성복지 인권활동, 양성평등문화 확산사업, 생활정치 실현, 여성정책 개발 및 조직, 평화 통일사업,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등을 펼치고 있다.▲역대 상임대표박상희(88∼89년) 전북민주여성회 초대회장, 김부남 사건대책위원장,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상임대표·상담소장, 전주나눔교회 당회장 역임.고영자(90∼92년) 전북여성운동연합 초대 상임의장, 도의원, 교육개혁시민연대 공동의장 역임.엄영애(94∼96년) 전국여성농민회연합부회장 역임, '한국여성농민운동사'를 펴내는 등 부안에서 여성농민 관련 활동.이강실(97∼2004년) 전북민주여성회 초대부회장, 전북여성단체연합 초대 상임의장 역임, 전주고백교회 부목사.김은경(2005∼2007년) 전북여성단체연합 평화통일위원장, 성매매 부설 쉼터 소장 역임, 이리 중앙교회 목사, 전북이주여성 쉼터 소장.박영숙(2008년∼현재) 전북가톨릭노동청년회(JOC)회장 역임, 전북여성노동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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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명숙
  • 2008.05.14 23:02

[여성의 힘 2050] 가족나들이 추천 - 충남 홍성군 '그림이 있는 정원'

지난주 가족과 함께 '그림이 있는 정원'에 다녀왔다.서해안고속도로를 1시간 30분정도 달리면 홍성군 광천면이 나온다.우리를 반기는건 정돈되지 않은듯한 아담한 주차장이다. 매표를 해서 들어간 정원은 정말 근사했다. 우선 울긋불긋 화려한 꽃들과 희귀한 나무들이 반긴다. 흔히 볼수없는 야생초도 한몫한다.'그림이 있는 정원'은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담긴 정원이다. TV인간극장에도 소개된 바 있다. 아들이 대학교 MT를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척추를 다쳐서 전신마비가 된 것이다.유일하게 얼굴부위만 움직일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아버지는 정원을 만들었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지금의 '그림이 있는 정원'이다.아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가꾼 정원이 조화를 이루며 봄을 맞고 있다.수생식물원의 연못에 살고 있는 올챙이떼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암석원앞의 폭포는 봄의 따뜻함과 조화를 이루어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다.또한, 곳곳에 심어져있는 보라색 꽃잔디와 빨강,노랑,주황색의 튜울립과 노란 수선화,삼림욕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심어져 있는 소나무들이 장관이었다.'그림이 있는 정원'은 아이들 동화책으로도 출간이 되었다. 동화책을 읽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간단한 도시락을 들고 나들이 코스로 잡아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아이들이 방명록에 쓴 글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동적이에요. 힘내세요.." (http://www.gallerygard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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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정숙
  • 2008.05.12 23:02

[여성의 힘 2050] 장애·15살 나이차, 사랑으로 극복하죠

올해 스물아홉살인 신명환씨(전주시 인후동)의 하루는 이른 새벽인 6시에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세수를 마친 명환씨는 아내를 위한 아침밥을 준비한다. 오늘의 메뉴는 아내가 좋아하는 미역국과 감자볶음이다. 아직은 서툰 솜씨지만 이제 제법 모양새를 갖춘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된 명환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밥상을 받아줄 아내를 생각하면서 행복해진다.아내 윤복희씨(44)와 살게 된지 벌써 6개월. 그 6개월동안 명환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 복희씨를 위한 밥상을 차리고 있다.명환씨의 아내 복희씨는 1급 지체장애를 겪고 있어 명환씨의 도움 없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밥을 먹지도, 간단한 볼일조차 볼 수가 없다. 명환씨는 복희씨를 만나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지난 1년간 복희씨의 손발이 되어오고 있다.명환씨의 몸도 그리 성한 것만은 아니다. 2년전 뇌종양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고 말았다.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던 명환씨에게는 생애 최고의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명환씨는 도리어 위기를 기회를 삼았다. 장애를 앓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자원봉사 활동가로 나선 것.한쪽눈만 잃었을 뿐이지 손발이 성한 명환씨는 자신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명환씨가 복희씨를 알게 된 건 꼭 1년 전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복희씨를 처음 봤다는 명환씨는 갑자기 환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면서 그 때를 회상한다.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야학을 다니면서 만학의 꿈을 키우는 복희씨가 명환씨의 마음으로 들어온 것이다. 명환씨는 바로 그 다음날, 복희씨가 다니는 야학으로 직접 그녀를 찾아나섰다고 한다. 처음 만난 복희씨에게서는 휠체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환한 빛이 났다고.복희씨에게 명환씨의 사랑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5살의 나이차와 세상의 눈, 그리고 불편한 자신의 몸으로 인해 명환씨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환씨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해 9월, 복희씨가 또 한차례 다리 수술을 받게 될 즈음에는, 아예 병상에 붙어서 그녀를 간호했다. 두달동안의 극진한 간호가 복희씨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결국 복희씨도 명환씨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둘은 부부가 되었다.그러나 복희씨의 병이 갈수록 심해져 두사람은 힘든 시련을 겪었다. 명환씨가 없으면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 먹지도 못하고 꾹 참아야하는 복희씨 때문에 명환씨는 마음 놓고 자원봉사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니,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 다행이 지금은 복희씨의 몸이 많이 좋아져서 명환씨의 마음은 한결 편하다.함께 산 지난 6개월 동안 말다툼 한번 해본적 없다는 복희씨와 명환씨.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심심함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이들 부부는 천상 연분이다. 훗날 아내가 건강해지면 함께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싶다는 명환씨는 더불어 복희씨의 영원한 보디가드가 되는 게 꿈이란다. 세상의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는 복희씨와 명환씨의 사랑.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내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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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현
  • 2008.05.12 23:02

[여성]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라일라니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라일라니(30·전주)는 밝고 명랑하다.방과후학교와 사설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가 전북지역에 살면서 가장 신나고 즐거운 일은 축제 행사가 많아서 놀러 다닐 곳이 많고 볼 것이 많은 것. 전주영화제니 춘향제니 한지축제니 각종 축제가 많은 5월에 그는 더욱 활력이 생긴다.지난해에는 김제에서 열린 지평선 축제에 전북지역에 거주하는 필리핀 친구들과 대회에 출전, 필리핀전통춤 스윙댄스 등을 펼쳐 장려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또 가톨릭 신자인 그는 전주가톨릭센터 후원으로 열린 전주시 중화산동 축제에도 참여했고, 지난해 전주 민촌가든에서 열린 필리핀 전주커뮤니티 행사에서 강신일 시인의 시 덕진공원에서를 낭송해서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라일라니가 한국과 인연을 갖게 된 때는 2004년. 필리핀에서 친구의 한국 남자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 진안 출생의 이 남자를 만난 자리에서 덜컥 결혼을 약속했다. 영어를 몰랐던 그가 소개받은 지 한달 만에 필리핀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영어로 대화가 되는, 남편의 노력에 감동, 자신의 결혼에 확신을 갖게 됐다.필리핀 샌드라무손 주립대학에서 3년간 경영학을 전공하고 출판회사를 다니면서 마케팅부서에서 3년간 디자인과 고객 상담을 해왔다. 돌아다니는 일에 피곤을 느끼면서 정착을 하고 싶어서 또다시 몰리칸 주립대학에서 1년간 교육학을 배웠다. 졸업 후 1년 동안 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통해 교육기법을 익힌 다음 사립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교사로서의 적성을 뒤늦게 발견하고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던 상황에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필리핀에서 잘 나가던(?) 그는 결혼 후 이렇다 할 만한 일없이 있다가 2005년 시댁 조카의 도움으로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방과후학교 교사로도 활약한 그는 현재 오전에 유치원, 오후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인기 높은 영어선생으로 알려졌다. 가끔 개인교습도 하지만 본업은 아닌 상태. 내친 김에 보다 좋은 영어선생이 되기 위해서 전주YWCA부설의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교육자료 게임 등을 활용한 교수기법을 배웠고, 이 센터에서도 라일라니는 탁월한, 눈에 띄는 영어교사로 일컬어졌다.교회에도 가고 주말 진안에 가서 시부모 농사일도 돕고 매년 7월에 가족휴가를 보내는 것이 라일라니의 일상이 됐지만, 그는 가르치는 것이 어렵고도 고상한 작업으로, 아이들은 특히 보여주는대로 흡수하므로 더욱 큰 보람을 느낀다. 가르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시를 영어로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스스로 대견하고 놀랍다.한국학생들이 필리핀 아이들보다 질문이 많아 문법 등 설명을 잘 하려면 준비를 그만큼 많이 해야 한다.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신뢰성을 주는 교사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는 학급경영도 일종의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아이가 없는 그에게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다. 필리핀에서는 부유한 학생만 사설학원을 다니고 대부분 공교육에 의존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각종 학원에 다니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으며, 이는 한국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특출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고 그래서 아이들이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고 판단한다. 필리핀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에 따라 열등에서부터 우등까지 1∼8등 분류해서 가르치고 중간 체크로 이동을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은 편이라고. 필리핀에서도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고, 일상대화는 필리핀 자국어로 하지만 영어가 자연스러운 이유를 모든 교과목이 영어로 돼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성실, 헌신, 최선 라일라니는 이러한 모토를 세우고 주위 아이들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07 23:02

[여성] 존경과 믿음이 '모범 가정' 만든다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여성월간지의 부록으로 나와 있는 가계부를 쓰고 있습니다. 수입과 지출을 낱낱이 기록하니까 집안 경제 상황을 자녀들이 다 알아요. 남편이 술 담배를 안 하고 허튼 데 돈을 쓰지 않는 편이지요.부모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결국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올려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손자녀들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주위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는가 봅니다.우리 가정은 엄부 자모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존경받는 부모라면 가정이 살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되지요.아이들이 클 때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깨우침을 준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공부가 왜 필요한가? 그리고 현재 자신의 여건을 파악하게 하려고 했지요. 방향만 잡아준 셈입니다. 대신 참고서 도서 등 좋다고 하는 책은 다 사줬습니다, 공부 자체가 아니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학원 등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주력했으니까요. 물론 아들 딸 둘 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 행운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영어로 쓴 일기를 영어선생님한테 가서 봐달라고 한다거나, 수학문제집 풀다 안 풀리면 교무실 가서 선생님에게 여쭤보고 그랬을 때 일일이 성실하게 답해주는 교사들을 만났던 것이 두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남편은 프로야구나 고교야구 기록을 적어두었다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알려주고, 월간팝송 잡지를 매달 사줬는데 이 것이 취미생활로 이어지더군요. 저는 간식을 준비해서 준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옆에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4대째 이어지는 신앙생활은 학창시절 아이들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한 근본이 된 것 같습니다. 가정교육은 사표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요.최신자 씨(전주)는 1941년생으로 유철종 전북대 교수와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으며, 주부교실전라북도 부지부장을 지냈다.

  • 여성·생활
  • 전북일보
  • 2008.05.07 23:02

[여성] 가족의 범위' 남성들이 더 넓게 생각한다 <여성신문>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로운 신분등록제가 실시된 지 4개월여가 지났다. 가족에 대한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이 때, 여성신문사가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족의 범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결과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를 자녀와 부모뿐 아니라 자녀의 삼촌, 이모, 고모 등 확대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남자는 확대가족에, 여성은 부부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여성신문사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의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느 선까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에 35.4%가 '부부와 자녀, 자녀의 조부모와 삼촌·이모·고모까지'를, 27.1%가 '조부모까지'를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가족의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가족의 개념이 강한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부부만(8.3%), 혹은 부부와 자녀만(25.1%)을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답변도 33.4%로 3분의 1을 차지했다.또한 핵가족을 보는 남녀의 의식에서 차이를 보였다.삼촌·이모·고모까지가 가족이라고 답한 비율은 남자 38.3%, 여자 32.3%로 비슷했지만 부부와 자녀만을 가족으로 포함시킨다는 답변에서는 남자의 경우 18.8%, 여자는 31.6%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07 23:02

[여성] 한지 공예가 김혜미자씨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 한 켠에 김혜미자 전통한지공예연구실, 이지원(以紙園)이 있다. 전주 한지의 귀한 가치를 일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김혜미자씨(67)는 명실공히 한지고장 전주의 자랑이다. 젊어서는 꽃과 더불어, 불혹을 넘어서는 청아한 한지를 곁에 두고 한지를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있어서, 또 일이 있어 행복하다는 그.한지, 만져보고 하늘에 비춰보고 염색도 하며 마냥 좋았다. 어떤 한지가 질 좋은 것인지, 왜 섬유질이 길면 좋다고 하는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전주와는 어떤 인연인지, 어떻게 쓰이고 어떤 공예품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며 한지의 매력에 빠져 겁 없이 시작한 일. 천박하거나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격조 높은 한지의 화려함, 맑고 투명함에 더욱 한지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꽃을 셀로판지에 싸서 다발을 만들 때도 맨 마지막에는 한지로 마무리를 해왔던 그가 어느날 TV에서 보여준 한지상자에 눈길을 빼앗기고, 이내 1980년 중반부터 스승을 찾아 서울과 충남 홍성을 매주 한차례 오가며 한지공예를 배웠다. 1993년 첫 개인전을 열고 이 작품전시회를 계기로 전주예총이 전북도예총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첫 행사로 전주한지축제를 테마로 삼게 됐다. 이렇게 김혜미자 씨의 공이 많이 들어간 전국한지공예대전도 올해로 14회를 맞으면서, 한지공예가로서 데뷔하는 무대로 성장했다.'한지공예의 전령사??로 불리는 그는 어쩌면 가슴 한 자락에 안고 있는 불덩이를 한지로 풀어내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아리게 가슴에 담고, 또 한편으로는 곱고 아름답게, 튼실하고 쓰임새 있게 한지작품을 만들어 우리네 생활에 접목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그는 또 대한민국 한지공예가 중에서 색을 멋스럽게 내는 공예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색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꽃`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200가지가 넘는 한지 색에 매료돼 제자를 가르치면서도 조금 다른 색지를 보면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힌다.그는 이제 우리나라 한지유물을 재현하는 일에 몰두하리라는 마음을 굳혔다. 강의를 위해 7년째 국립민속박물관을 다니면서 우리나라 한지유물이 다른 유물에 비해 낡고 형태가 부스러지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 옛 어른들이 쓰던 유물을 그저 흉내만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움도 있었으나 스스로 전통을 하는 사람의 마음자세를 갖추게 되는 듯 싶어 걱정을 놓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으로 선조들의 멋을 느끼게 되고 선조들의 지혜가 가슴이 아프게 와 닿는다.지난해 대한민국장인 33명중 한명으로 4대 국새 제작에 참여, 12월 석(席, 받침) 제작을 마칠 때까지 실패를 거듭하며 마음 졸였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 닥으로 외발뜨기를 거쳐 뜬 한지를 겹겹이 붙여서 다듬이로 두드려보기도 하고, 종려나무 뿌리로 만든 타솔로 두드려보고, 찹쌀풀을 몇 개월간 저어가며 썩혀도 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 전통의 바탕위에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일에 마음이 편해졌다.이지원에서 뿐 아니라 대학(전북대평생교육원 전담교수 역임, 전주기전대 전임교수)과 기관 학교 단체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95년 제1회 전국 한지공예대전 대상 경력의 그는, 제자들과 회원전(지우회전)을 꾸준히 열고 있으며, 각종 국내외 초대전도 열고 있고, '한지 그 멋과 공예의 세계` 책도 펴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한지공예대전 심사위원장과 대한민국 현대전통공예공모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한지문화대전 심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한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 특히 전주한지의 명성을 되돌리는 일에도 일조를 하고 싶어하는 그의 뜻을 세 딸 중 큰딸 선주씨가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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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명숙
  • 2008.04.30 23:02

[여성] "칭찬은 자녀의 소질을 키워줍니다"

자녀를 칭찬으로 키운 것이 잘 한 일 같습니다. '칭찬은 금은보화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3남2녀, 5남매가 매사에 긍정적이고 '아니오'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자라주었는데, 이 모두 칭찬 덕분이라고 봅니다.큰아들이 10살때였으니까, 70년대인데요. 시계나 전자제품이 흔하지 않을 때였지요. 새 물건을 다 뜯어놓아서 망가지곤 했는데도 남편이 화를 내지 않고 "커서 뭣 될려고 그러냐?"는 식으로 물어보고 "조립 잘했다"고 칭찬하곤 했지요.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몇번을 힘주어 강조하던 아들은 말 그대로 됐지요. 소질을 칭찬하면 그대로 된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남편(김홍술씨, 가축병원 운영)도 54세에 고인이 되기 전까지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돼지 500마리를 키우면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책임감 강하고 열심히 살아온 아빠를 아들과 딸이 닮은 것 같습니다. 저도 48세에 남편을 잃고 억순이, 또순이로 살았지요. 비행기 조종사인 큰아들은 지금도 똥수레를 끌었던 엄마를 생각하면 정신이 바짝 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다들 잘 커줘서 결혼 후에 교사를 하는 큰딸을 제외하곤 큰아들을 비롯해서 둘째딸이 뉴질랜드에서, 둘째아들이 인도네시아서, 막내아들이 뉴질랜드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지구촌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자녀들이 매월 통장에 넣어주는 용돈, 그 돈으로 봉사도 하고 마을노인회장을 맡아서 어르신들 보살피며 재미있게 살고 있지요.조순화씨는 1940년생으로 전라북도새마을부녀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라북도여성단체협의회 특별사업위원, 정읍시여성발전동우회원, 정읍시 이평면 무릉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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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8.04.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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