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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야구와 인생 - 김생기

요즘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스포츠채널에서 이승엽선수가 속해 있는 요미우리자이언트 팀과 상대팀과의 경기를 생중계해준다. 일본에 거래처를 두고 있는 입장에서 이승엽선수가 잘 하면 일본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며 간접적으로는 영업에 큰 도움이 된 다. 25일의 후반기 첫 게임은 센트럴리그에서 4위를 달리고 있는 히로시마카프와의 경기로 후반기 첫 게임이라 주목을 받은 경기였다. 이선수가 솔로홈런과 2루타를 작렬시켰지만 팀은 4대2로 패하였다. 요미우리는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 팀으로 수도인 도쿄를 본거지로 하고 있다. 이러한 요미우리가 요 몇 년 안 풀리더니 올해 전반기에는 4번 이승엽 5번 다까하시 6번 고꾸보 7번 아베로 이어지는 강타선으로 선두를 지키더니 이승엽을 제외한 선수들의 부상으로 끝 모를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반기부터 쭉 봐왔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안 풀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길고긴 10연패 뒤 1승 다음에 또 9연패 그리고 2승후 6연패를 하면서 센트럴리그에서 6위 요꼬하마와 반 게임 차 인 5위까지 떨어져 있다. 이승엽의 홈런 뒤 선행주자인 오제끼 선수가 3루를 안 밟았다고 해서 홈런무효처리도 있었고 결정적인 찬스 때마다 심판들이 상대팀에 유리한 판정을 하는 것도 보았고 한 선수가 부상당하면 곧이어 다른 선수가 부상을 당하고 잘 쳤는데 파울라인을 살짝 벗어나고 상대팀이 친 타구는 어이없게 안타가 되는 일을 많이 보았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이 선수만이 요꼬하마의 무라다와 8개차인 30개로 센트럴리그의 홈런1위는 물론 퍼시픽까지 합한 일본리그에서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안 풀리고 안 풀리는 일이 많이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아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다가 재미있게 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잘나갈 때에는 별 문제가 없다. 안나가고 안풀릴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번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의 왕복 10차선 도로에서 2차선으로 음악을 들으며 여유 있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폐기물을 실은 트럭이 뒤에서 받아서 6중 추돌사고 있었다. 꽝하는데 반쯤 정신이 없어졌다. 그러나 안전벨트를 맨 덕분에 뒤 트렁크 부분만 휴지처럼 구겨지고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는데 운명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일본과 싱가폴에 수출을 하는데 환율이 20프로나 떨어지는 바람에 경영이 힘들어졌다. 이것도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의 문제이지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나쁜 일중에서 몇 가지만 당했을 것이니까 말이다.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이 있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가 다가 추락했다면 그 돈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서 안타까울 것이고 그에 앞서서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못 만나고 떠나는 것이 가장 쓸쓸하?! ? 괴로울 것이다. 좀더 생각하면 하느님의 사랑이라도 많이 받도록 노력했던지 아니면 부처님의 경지로 가려는 뜻으로 마음이라도 닦았으면 다음을 기약하며 죽어갈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짧지만 40년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야구에서 1회에서 9회가 있는 것같이 인생도 그렇다는 것이다. 1회에서 3회까지는 대학교까지이며 4회에서 7회까지는 70세까지이며 8,9회는 그 이후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아무리 공부 잘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문대학교에 들어갔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좋은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 또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인생의 길을 걸었느냐이다. 1회에서 9회까지 그냥 술술 풀릴 때도 있지만 한점을 내기가 그렇게 어려우며 또한 한점을 지키지 못해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한회가 무척 길게 느껴 질 때가 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점 한 점 당차고 활기 있으며 자신감 있게 걸어가며 어려울 때는 좌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나 하나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안다면 하루 하루를 좀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요미우리 하라 감독 같은 덕이 있는 감독이 좌절로 벽을 손으로 치는 모습을 보았다. 나 같으면 그만 둔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둔다고 능사는 아니며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전주에 있는 전주고등학교 야구부가 박성기 감독 취임이후 로 경기내용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 요미우리 팬들이 몇 십 연패를 당하더라도 도쿄돔을 꽉 채 우며 우리는 끝까지 응원하겠다는 소리를 들으며 실제로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주시민들과 전북도민들도 마음으로 정을 나누어주었으면 한다. 누구나 다 홈런을 치고 퍼펙트게임을 할 수는 없다. 못하더라도 잘할 수 있다는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주면서 인생은 진행되는 것이다. 하루를 끝마치면 항상 나는 행복하다. 모든 것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나도 노력했다. 좌절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비행기 여행이 많은 나로서는 언제나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이 삶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야구에서 번트와 희생타 또는 진루타가 중요 하듯이 화려한 홈런을 치는 능력이 못되는 입장에! 서 겸손하게 다음 세대에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김생기(전주고 야구부후원회장)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8.01 23:02

시골마을 웃음꽃 '동의난달 仁術의 힘'

교통이 불편하고 마땅한 의료시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원시 아영면에 대규모 의료진이 찾았다. 한의사 중심의 노인복지 및 의료봉사 단체인 동의난달(이사장 신재용)이 주인공. 동의난달의 ‘동의’는 한의학, ‘난달’은 길이 여러 곳으로 통하는 곳을 말하는 것으로 어짐과 의로움, 예의와 지혜를 추구하는 의료인들의 모임이다. 이 단체가 아영면을 찾은 것은 의료단장을 맞고 있는 이광연 원장의 고향이라는 점이 인연이 됐다. 94년 아영을 처음 찾은 뒤 올해로 3회째 아영을 찻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도 한의사와 의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100여명의 봉사단원이 아영면과 인근의 인월, 산내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27일부터 30일까지 혈압과 당뇨, 소변 등 간단한 검사와 한방진료, 침구 및 물리치료, 초음파 검사한약 투약 등의 의료봉사를 했다. 이들은 또 마을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창의력교실’과 ‘어린이 도보 국토순례’ 프로그램도 마련해 호평을 받았다. 동의난달은 이와 함께 방송인 김병조씨를 초청해 ‘명심보감에서 배우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신재용 이사장과 원광대 한의대 윤용갑 교수 등으로부터 한의학 분야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시간도 가졌다. 김순달(67) 할머니는 “시골이다보니 제대로 된 한방 치료를 받기가 어려워 너무 불편했다”며 “그러나 한의사 선생님들이 해마다 우리 마을을 찾아 자상하게 치료를 해주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동의난달 이광연 단장은 “사랑을 나누며 베푸는 법을 배우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라며 “우리의 작은 정성이 농촌 주민의 건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지역일반
  • 신기철
  • 2006.07.31 23:02

[나의 이력서] 덕성여자대학교 이사장 이종훈 - 촌티 고교생

전쟁 중에 증조부모 모두 돌아가시고 숙부들은 결혼하여 분가하고 고모들도 출가하여 식구들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동생들이 계속 태어나 대가족은 계속되었다.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아버지 모두 전형적인 농촌의 선비셨으며, 어렸을 때 증조부의 서당과 향교에서 백일장을 여는 것을 본적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직업의식을 약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장래 희망도 별로 없어서 공부하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수가 돼 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 같으며, 집사람도 그런 인연으로 선택하게 됐다. 아들과 두 딸도 모두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학인이 되었다.중학교와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모두 생소하고 친구도 전혀 없어 학교생활은 재미도 없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 기차통학을 반복하였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인 여유도 점점 없어졌고 학교 내에서의 생활도 촌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샛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청년이 무엇이 두려워서 자신의 비전과 야망 하나 키우지 못했는지 후회도 된다. 스스로 그때의 내 자신을 평가한다면 유능하지도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무능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어리석은 모습이었다.특히 고등학교 때는 이방인 신세가 되어 의욕도 없어졌고, 더욱이 담임선생님들과도 각별하지 못하여 무미건조한 학교생활을 했을 뿐이다. 다행스럽다면, 특별히 영어를 잘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주 엄격하셨던 정락선 영어 선생님으로부터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분을 찾아뵙는 스승으로 기쁘게 모시고 있다.3학년이 되어서도 장래의 희망과 대학의 전공분야를 정하지 못했는데 경제과목에 취미가 생겨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흔히 접하는 회사나 은행 그리고 금융조합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경제과목을 통해서 비로소 그 역할을 짐작하게 되었고, 궁금했던 사회물정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산업과 직업과 직종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알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경제공부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는 지리과목을 좋아했다. 농촌마을이 생활의 전부였던 나는 지리과목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스스로 탐구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서울지도에 관심이 있었는데, 군산·이리·전주 등 두 글자의 지명과는 달리 서울의 영등포·노량진·이태원 등 세 글자로 된 지명도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일본·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지도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하지만 거기에서 큰 의미를 느끼지를 못했는데, 경제과목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큰 뜻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조부께서는 ‘어떻게 먹고살기 위해 상과대학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남자가 큰 뜻을 가지고 법과대학에 가라고 강조하셨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의식이 강하셨지만, 나는 직업으로서의 법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그때 권력에 대한 저항도 있었던 터였다. 결국 대학입시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실력이 부족하여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대신 때마침 이리에 피란 내려온 중앙대학교의 분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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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6.07.31 23:02

[이치백의 一日五話] 이준열사 헤이그서 순국

《7월 31일》①이준 선생 ‘분사’로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참석하려다가 일제의 방해로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이준 열사는 7월 14일 현지에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되자 세상에서는 할복으로 순국했다고 전해져 왔다. 이에 1957년 7월 31일, 당국에서 ‘분사’로 결론을 내렸다.②진보당 조봉암 당수 처형진보당 당수로서 북한의 남파간첩 양명산에게서 정치자금 수령 및 무기불법 소지혐의 등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이 선고된 조봉암이 1959년 7월 31일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서울지법의 판결에서 공작금 수령은 무죄이고, 다만 무기불법소지로 5년형이 선고 되었었다.③매국역적 ‘합방’ 모의구한말의 매국여적 이완용?송병준?박제순?조중현 등 소위 대신급들이 1910년 7월 31일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한일합방 문제에 대해 모의를 했다. 이자들은 일찍부터 일제의 주구가 되어, 왜놈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던 자들로써, 이날 한일합방의 촉진책을 논의했던 것이다.④에디슨, 축음기 발명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 1876년 7월 31일, 축음기를 발명했다. 학교교육이라고는 3개월밖에 받은 일이 없으나 어머니 지도로 공부한 그는 이 외에도 전등·영사기·축전지·투표기록장치·시세통보기 등 무려 1천여 종의 발명특허를 얻었다. 1847년 2월 7일 출생한 그는 1931년 10월 18일 84세에 세상을 떠났다.⑤칠 석오늘은 음력 7월 초이렛날로 칠석. 이날엔 은하 동쪽의 견우와 서쪽의 직녀가 오작교에서 1년에 딱 한번 만나는 날이라고 전해 온다. 또 이날 여인네들은 ‘걸교’라 하여 견우와 직녀에게 길쌈과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고, 책을 볕에 쬐이고 통풍시키는 ‘폭서’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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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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