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출신 역대 국회의원 - 5·16이후 중앙무대 주류로…90년대 민주당 텃밭
■ 전북정치 전성기, 6대~12대5·16군사정권 이후 전북의 정치적 위상 및 지형은 크게 변화됐다.전북지역 국회의원 선거구가 24개에서 11개로 줄어들었고, 정당분포는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과 민주당간의 양당 경쟁체제로 나뉘어졌다.전북의 국회의원 수는 6·7대 11명(지역구 131, 전국구 44), 8대 12명(지역구 153명, 전국구 51명), 9대 12명(지역구 146명, 유정회 73명), 10대 12명(지역구 154명, 유정회 77명), 11·12대 14명(지역구 184명, 비례 92명)이었다.이 시기의 전북 정치권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군사정권에 반대해 대부분 야당에서 활동한 전북 의원들은 당내 주류로 활동하는 등 정치의 핵심이었다. 유진산 의원은 당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 대표를 맡는 등 주류 계보를 형성하고 있었고,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당내 40대 3인방이었던 이철승 의원은 유 의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1976년에 신민당 당수에 오르는 등 맹활약했다. 양일동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반 유진산계를 형성하며 독자노선을 걷는 등 선 굵은 정치를 펼쳤고, 1973년엔 민주통일당을 창당해 총재를 맡았다. 여당인 공화당에선 장경순 의원(김제)이 당 사무총장과 중앙위의장 등을 맡는 등 실세로 활약했다.그러나 1970년 중반 이후 유진산·이철승 의원이 당권투쟁에서 밀리면서 동시에 전북 정치권도 급격한 하향세를 걸었다. 이후 2004년 열린우리당의 김원기·정세균·정동영 의원이 정치의 중심으로 재등장할 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변방에 머물렀다. 재기를 노렸던 이철승 의원은 12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여야 정당간 황금비율 분할1963년 6월8일 치러진 6대 총선에서 전국구제(비례대표제)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 해 창당된 민주공화당이 전북에서 제1당의 자리에 올랐다. 공화당은 장경순 의원을 위시해 11개 선거구중 7개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반면 윤보선 전 대통령이 이끈 민정당은 유청(전주)·고형곤(군산·옥구) 의원 등 3명, 민주당은 라용균 의원 1명에 불과했다. 고형곤 의원은 12대 국회때 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된 고건 전 국무총리의 부친으로 도내 첫 부자(父子)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장경순 의원은 초선으로서 국회부의장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다.7대 총선(1967년 6월8일)에선 민주공화당이 도내 11개 선거구를 모두 석권했다. 전북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일당 독식이다.그러나 8대 총선(1971년 5월25일)에 들어서 공화당 6석, 신민당 6석 등으로 균형이 맞춰졌다. 신민당의 강근호(군산·옥구), 양해준(남원), 진의종(고창) 의원, 공화당의 유기정(완주) 의원이 처음으로 금뱃지를 달았다.8대 국회는 4·5대처럼 박정희 대통령의 1972년 10월17일 비상계엄선포로 1년도 못돼 해산됐다.9대 총선(1973년 2월27일)에서는 공화당 4명, 신민당 4명, 무소속 4명으로 황금분할이 이뤄졌다. 10대 총선(1978년 12월12일)에서도 민주공화당 6명, 신민당 4명, 무소속 2명 등 세력 균형이 이뤄졌다.9대때 입문한 손주항(임순남, 무소속) 의원은 10대때 옥중당선돼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북일보사 사장을 역임했던 채영철(군산·이리·옥구·익산) 의원은 공화당 후보로 9대와 10대에 재선에 성공했고, 언론인 출신인 김원기(김제·정읍) 의원은 신민당 후보로 10대 국회에 첫 입성했다. 9·10대 국회에서는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원의 1/3(73명)을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중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유신정우회가 구성됐다. 유신정우회는 1980년 10월 통일주체국민회의와 함께 해체됐다. △ 신당 돌풍속 정치신인 잇단 영입10·26사태로 등장한 신군부의 정치활동규제로 발이 묶여 있던 정치인들은 1981년 부분 해금조치로 활동을 재개했다. 전북지역 선거구가 14개로 늘어난 11대 총선(1981년 3월 25일, 중선거구제)에서는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이 7석, 민한당이 6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했다. 군산시장을 역임했던 김길준(군산, 옥구) 의원이 유일한 무소속이었다.민정당의 임방현(전주,완주)·고판남(군산, 옥구)·황인성(진무장)·문병량(이리, 익산)·양창식(임순남), 민한당의 김태식(전주, 완주)·오상현(진무장)·이형배(임순남)·김진배(김제,부안) 의원 등이 정계에 입문했다.12대 총선(1985년 2월12일)은 정치활동규제에서 해금된 야당 정치인들이 선거를 불과 25일 앞두고 창당한 신한민주당이 신당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에선 고건(군산,옥구) 전 총리 등의 민정당이 7석, 이철승 의원을 비롯한 신민당이 3석, 김광수(진무장) 의원의 국민당이 3석, 민한당이 1석을 얻었다.■ '민주당 독주' 13대~18대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평화민주당의 황색바람이 몰아친 13대 총선부터 전북에서의 여야 정당간 균형은 깨졌다. 13대때 평민당은 전북에서 싹쓸이했다. 이때부터'(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이 나돌았다.이와함께 전북의 선거구는 전체 국회의원 정원이 299명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오히려 줄어드는 등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13대는 14명(지역구 224명, 전국구 75명), 14대 14명(지역구 237명, 전국구 62명), 15대 14명(지역구 253명, 전국구 46명) 16대 10명(지역구 227명, 전국구 46명), 17대 11명( 전국구 56명), 18대 11명(전국구 54명)이었다.김원기 의원을 비롯해 정치 신인들이 잇따라 영입되면서 전북 정치권을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더불어 지난 1970년대 이후 중심에서 밀려난 전북 정치권의 재기를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김원기 의원은 16대 대선때 노무현 대통령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김원기 의원은 열린우리당 상임의장과 대통령 정치특보를 거쳐 국회의장이 역임하는 등 지역정치의 맏형 역할을 맡았다.한편에선 정국이 급변한데다 주민들의 정치에 대한 변화욕구가 커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선거때마다 평균 30% 정도의 인물이 교체됐다.△ 황색바람, 전북 의석 싹쓸이평민당의 황색바람이 분 13대 총선(1988년 4월26일)에선 여당인 민정당이 전체 의석의 42%에 해당하는 125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했다.전북에선 평민당이 14석을 모두 차지했다. 오탄(전주갑)·채영석(군산)·이협(이리)·조찬형(남원)·정균환(고창) 등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절반 가량의 현역의원이 교체됐다. 반면 이전까지 활동했던 공화당 및 민정당 계열의 여권 인사들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14대 총선(1992년 3월24일)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14석 가운데 12석을 차지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양창식(남원)·황인성(진무장) 의원 등 2석만을 건졌다. 민주당의 장영달(전주완산)·최재승(익산) 의원 등이 처음으로 등원했고, 1964년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시위(6·3사태)를 주도했던 박정훈 의원이 전국구(14대)에 이어 15대때 임실·순창에서 당선됐다.14대 국회에서는 30여년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됐다.대통령 선거(1997년)를 1년여 앞두고 치러진 15대 총선(1996년 4월11일)때는 구민주당 출신들이 대거 합류해 창당한 국민회의가 14석 가운데 13석을 차지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강현욱(군산을) 의원이 유일했다. 강 의원은 16대때는 민주당으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이때 전북 정치를 이끌어갈 정동영(전주 덕진)·정세균(진무장) 의원이'젊은 피'로 국민회의에 영입됐다.헌정사상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로 들어선 김대중 대통령의'국민의 정부'때 실시된 16대 총선(2000년 4월13일)에서 여당인 된 민주당은 10석중 9석을 차지했다. 이강래(남원 순창) 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해 전북은 민주당 일색이 됐다. 전국 최다득표(9만8746표, 88.2%)를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한 정동영 의원은 당(민주당) 최고위원과 당(열린우리당) 의장에 이어 17대 대선땐 당내 대권후보로 나서는 등 초고속 행진을 거듭했다.△ 정국 변화속 급격한 세대교체 대통령(노무현)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2004년 4월15일)에서는'탄핵'바람이 불면서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이 전북의 11석 모두 석권하는 상황이 또다시 벌어졌다. 전국적으로도 총 299명의 국회의원 중 211명이 초선으로 당선될 정도로 세대교체 바람이 거셌다. 지역에선 이광철(전주완산을)·채수찬(전주덕진)·강봉균(군산)·한병도(익산갑)·조배숙(익산을)·최규성(김제,완주)·김춘진(고창,부안) 의원이 초선이었다. 현역 교체율이 60% 이상에 달했다. 정세균 의원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및 당 의장, 민주당 대표를 맡는 등 지역 정치권의 중심 역할을 맡으며 중앙무대에서 전북 정치의 지평을 넓혔다. 19대땐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겨 5선에 성공했다.18대 총선(2008년 4월9일)에서는 통합민주당이 9석을 차지한 가운데 유성엽(정읍) 의원 등 무소속 2명이 민주당 텃밭에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이중 무소속의 이무영(전주 완산갑) 의원과 통합민주당의 김세웅(전주덕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신건(전주 완산갑)·정동영(전주덕진) 의원이 재선거에서 무소속 바람을 일으키며 당선됐다. 그러나 이들도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전북에서의 민주당 독주는 20여년간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