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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 ‘단풍’의 추억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이맘때 산책로나 숲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첫 구절이 떠오르는 시(詩), 1930년대 김영랑 시인의 ‘오매 단풍 들것네’다. 시는 언뜻 붉게 물든 단풍을 기다리는 낭만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시절 단풍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다가올 추위에 대한 자연의 예고였다. 감잎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잦아지면 겨울나기 걱정에 탄식이 나왔을 게다. 붉게 물들어가는 감나무 잎사귀를 보며 무의식중에 쏟아낸 탄식이 ‘오매, 단풍 들것네’인 것이다. 단풍은 나무가 메마른 겨울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옛 사람들은 나무처럼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또 걱정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당시 고단했던 서민 삶의 애환을 민중의 언어로 노래했다. 지금 우리가 첫 구절에서 느끼는 감성과는 차이가 많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단풍철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11월, 진작 ‘울긋불긋’ 물들었어야 할 가을 산이 여지껏 푸르다. 기후변화 시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가을이 지각하더니 단풍도 많이 늦어진다. 계속되는 이상기온이 단풍시계를 자꾸만 뒤로 돌려놓고 있다. 산림청이 지난 9월 말 발표한 올 단풍시기 예측도 한참이나 빗나갔다. 게다가 몇 해 전부터는 색깔도 곱지 않다. ‘예년만 못하다’는 평이 해마다 반복된다. 절정을 한참 지나 끝물이어야 할 내장산 단풍도 아직 절반 이상이 녹색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이 산을 찾은 수많은 단풍객들에게 실망과 아쉬움을 남겼다. 단풍객들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 계절이 수상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단풍철, 옛 사람들의 겨울나기 걱정은 진작 사라졌지만, 봄부터 내내 이어지는 이상기후로 인해 더 큰 걱정이 생겼다. 모경종 국회의원이 최근 환경단체와 함께 분석해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23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경제적 피해는 15조9177억원, 인명피해는 341명에 달했다. 울긋불긋 가을의 정취에 빠져들고 싶다면 지금 나서야 한다. 앞으로 형형색색 그 아름다운 오색 빛깔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을철 이상고온이 지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 단풍잎이 제 색을 찾지도 못한 채 바로 낙엽이 돼 땅바닥에 뒹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기후가 지속되면 단풍 시기가 계속해서 늦어지고, 또 짧아지면서 한국의 오색 단풍 풍경이 추억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잠시 한눈을 팔면 이 ‘틈새 계절’의 짧은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올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지금 당장 가을 산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11.04 16:38

전북의 살길은 원팀으로 가야

국감장마다 김건희여사를 특검에 세우기 위해 실컷 싸웠는데 최근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간 녹취록을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녹음파일에는 윤 대통령이 김영선 공천 좀 해줘라고 말한 대목이 들어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을 입증할 육성이 최초로 확인됐다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15일 이재명 선거법위반 판결을 앞두고 여당 공천개입 의혹을 전방위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4.10 총선 때 민주당 175석을 포함 야권이 192석을 확보하면서 여소야대정국이 형성돼 강대강으로 부딪칠 줄 예상했지만 그 수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여의도를 장악한 민주당은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20%대로 최저치를 기록하자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윤정권을 압박해 탄핵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지금은 여야가 마주보고 달려오는 기관차처럼가 전혀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아 국민들만 불안케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이스라엘 헤즈볼라간 전쟁도 멈추지 않아 국제유가가 출렁이면서 우리경제를 위협한다. 29조의 세수결함이 생긴 상황에서 내년도 국가예산을 677조로 긴축 편성했다. 각 자치단체에 제때 교부세등을 내려 보내주지 않아 도나 각 시군 살림살이가 어렵다. 특히 전북은 지난해 국가예산 삭감이란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내년도 예산을 1조 늘려 10조로 잡고 전방위로 국가예산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다행인 것은 정동영 이춘석의원등 다선의원들이 국감장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고 환노위원장을 맡은 안호영의원과 김윤덕 민주당사무총장과 3선의 한병도의원이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국가예산 확보에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날마다 정부여당과 민주당간에 죽기살기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여 자칫 전북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해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국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정부가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때문에 전북이 1조 늘려서 국가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방법은 전북 출신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소관 상임위에서 도의 협조를 받아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이춘석의원이 국감때 박상우 장관을 상대로 전북을 차별하고 홀대했다는 송곳질문을 해 대광법 통과에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둔 것처럼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서 전북예산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다음으로 과방위에 속한 정동영의원이 MBC 후배기자였던 이진숙 방통위원장 인사 청문회 때 논리정연한 질의로 정곡을 찌른 것처럼 산자부장관을 대상으로 미 중국이 AI에 사활을 걸었는데 우리도 AI산업에 체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정부에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AI산업진흥에 팔을 걷어 부쳤다. 지금 광주 전남이 박지원의원을 정점으로 원팀이 돼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전북의원도 5선인 정동영의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할 때다. 머리가 커졌다고 뒷담화만 까지 말고 실제로 원팀으로 가야 살길이 나온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11.03 18:46

교육감 선거의 흥행 실패 배경

지난 16일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같은 날 전국 4곳의 기초단체장 투표율 53.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5%에 그칠 만큼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학생 84만명을 관할하고, 교사와 교육공무원 5만여명의 인사권을 가진 수도 서울의 교육감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치라고 한다. 지방선거 때는 단체장, 지방의원과 동시에 투표하는 불가피성 때문에 적어도 40∼50%선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흥행 실패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학부모 교육열을 감안하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투표율이라는 것.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와 주목을 끈다. 교육감 선거가 갈수록 정치적 색채를 띠면서 되레 유권자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당 공천을 통해 전폭적 지원을 받는 정치인 선거와는 다른 기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 특유의 비전 제시와 대안 마련 등의 전략적 차별화가 절실한데 그렇지 못해 정치인 선거에 묻힌다는 것이다. 진영 대결과 흑색선전, 포퓰리즘 유세 등 선거 양상이 정치인 선거 못지 않다는 얘기다. 애초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교육감 선거의 정당 공천을 배제했는데 현실은 정치인 선거를 뺨쳐 학부모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셈이다. 미래 세대 학생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성, 교육 철학을 검증하는 거대 담론의 장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일각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이율배반적 선거 구조를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전북의 경우 시장 군수와 지방의원은 한 지역구에 국한돼 선거 운동을 하지만, 14개 시군이 표밭인 교육감 선거는 그만큼 부담감이 크다. 조직력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선거 속성으로 볼 때 정당 공천을 통해 제도적 지원이 불가피한데 족쇄를 채워놨다. 교육 만큼은 진흙탕 선거에서 벗어나 미래 인재를 키우는데 집중하자는 의미다. 그런데 선거 승리가 절실한 후보자 입장에선 불가피하게 같은 날 투표를 하는 정치권과의 '품앗이' 연대가 이뤄지는 걸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당 공천 없는 정치 선거나 다름없다. 전북 교육감 선거의 궤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첫 직선 최규호 교육감 시절은 교육 현장에서 정치적 색채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2010년 민주진보추대 후보로 당선된 김승환 교육감 때부터 이념 논쟁이 불거지면서 극단적 진영 대결로 치달았다. 진보와 보수 대결이 전국적으로 격화되면서 교육 정책을 둘러싼 단체간 이념 논쟁도 활발했다. 오죽하면 정당 후보를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정당의 상징인 빨간색과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후보자가 정치색을 노골화 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영 대결이 본격화 되면서 지지층 결집에 따른 '반쪽 교육감' 이 현실화됐다. 현 교육감을 거부한다는 홍보물로 뒤덮인 교육 단체 차량이 버젓이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10.31 18:58

기로에 선 반쪽짜리 새만금

새만금 산업용지가 없다고 한다. 과연 새만금 땅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개발이 더뎌 그런 것일까. 새만금사업은 처음엔 100% 농지를 조성할 예정이었으나, 2007년 농지 70%, 비농지 30%로 바뀌고, 이듬해 다시 농지 30%, 비농지 70%로 변경을 거듭했다. 현재는 복합개발용지, 산업연구용지, 관광레저용지, 환경생태용지, 농생명용지 등 세부적인 용도를 구분해서 새만금기본계획(MP)과 각 관계부처의 계획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 속도감 있는 개발을 위해 2013년 새만금개발청이 만들어지고, 2018년엔 공유수면매립면허의 권리 1조 970억원을 현물출자토록 새만금사업법을 개정, 결국 새만금개발공사도 설립됐다. 문제는 아직도 용지개발(매립 등)은 전체 291㎢ 중 50% 수준에 그쳐있다는 점이다. 매립이 완료된 농생명용지(=농지) 30%를 제외하고 나면 고작 20%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새만금에 땅이 없다”는 말은 최근들어 2차전지 특수 등으로 산업용지가 대부분 소진된 때문이다. 2030년까지는 큰 문제는 없으나, 그 이후 자칫 산업용지가 부족해 투자유치가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미 조성이 완료된 농생명용지를 전환해 산업용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타당한것 같으나 자칫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매립 등 용지조성을 더욱 늦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속도감 있게 더 많은 땅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새만금사업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 새만금 부지의 절반은 사실상 매립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는 상태다. 재정투자는 없고 민자유치를 통해 하겠다는 건데 전망이 불투명하다. 아직도 개발해야 할 땅이 상당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행정편의적으로 농생명용지를 전환해 산업용지로 쓴다면 결과적으로 새만금 전체의 매립 속도는 뚝 떨어지게 마련이다. 새만금개발청과 새만금개발공사가 보다 많은 땅을 만드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서 지금보다 가속 페달을 더 밟아야 한다. 산업용지를 적기에 공급하는 문제는 미개발된 노출 매립지 등을 통해 충분히 공급 가능하다. 위성사진을 보면 배후도시용지, 관광레저용지, 동서2축ㆍ남북2축 중심지 구간 등 이미 충분한 노출지가 있다. 작년 8월 한덕수 총리는 산업용지를 대폭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중앙정부가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 매립을 쉽게 할 수 있고 산업용지 확대는 식은죽 먹기다. 새만금 현지에서 방대한 노출 부지를 직접 확인한 사람이라면 “왜 이런 부지를 방치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것이다. 곧 확정될 새만금 MP 재수립과 그에따른 토지이용계획 변경은 지금의 반쪽짜리 새만금의 운명을 바꿀 일대 전기가 될 수 있다. 새만금 개발면적의 절반이 물에 잠겨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우선 당장 언발에 오줌누기식 결정을 한다면 이는 자칫 장기적으로 소탐대실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새만금이야말로 천천히 서둘러야 할 중대 사안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10.30 14:39

'디지털 쉼표'가 가져올 미래

프랑스 교육부가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사용금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이다. 그동안 시범적으로 시행해왔던 스마트폰 사용금지 규정을 초중학교 전체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교육부 학업성취 담당 장관의 인터뷰가 전해지면서 프랑스의 강경해진 스마트폰 사용 규제 정책, ‘디지털 쉼표’ 조치가 관심을 끌고 있다. ‘디지털 쉼표’는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AI 사용을 물리적으로 금지하는 정책. 등교할 때 스마트폰을 수거하고 하교할 때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미 지난달 시작된 신학기(9월)부터 중학교 200여 곳을 선정, 시범 시행에 들어갔다. 프랑스 교육부는 시행 한 달여 만에 시범적으로 참여한 학교들에서 긍정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학생들이 학습에 몰입할 수 있는 효과가 높다고 밝혔다. 사실 프랑스는 이미 2018년부터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제도화했다. 그러나 규제가 잘 이뤄지지 않자 ‘디지털 쉼표’라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냈다. 늦어도 2025년 9월 입학 시기부터는 ’디지털 쉼표‘ 조치를 전체 학교가 시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랑스 교육부의 목표다. 과도한 디지털화가 문해력과 학력 저하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교육 현장을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 교육에 제동이 걸린 지 오래. 이제는 학교 안 스마트폰 사용금지 정책까지 가세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적극적이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는 아예 스마트폰뿐 아니라 태블릿과 스마트워치까지도 제한하는 강경책을 내놓았고, 영국은 스마트폰 규제 지침을 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법률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SNS 중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규제하는 나라들도 생겼다. 우리나라는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강력한 규정이 아직 없다. 우리 정책이 이끄는 것은 오히려 교과서까지 태블릿으로 바뀌는 교육 현장의 디지털화다. 내년부터는 AI 디지털 교과서(인공지능 교과서) 도입도 예정되어 있다.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의 창의력을 강화한다는 것이 목표지만 앞선 나라들이 겪고 있듯이 예상되는 문제나 과제가 적지 않다. 거스르기 어려운 인공지능의 시대, 디지털의 효능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는 놀랍지만, 과도한 디지털 문화가 가져온 폐해 또한 크다. 우리보다 앞서 디지털화를 주도했던 나라들이 지금은 디지털화를 경계하면서 자정하는 상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프랑스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국가 위기로 규정하는 나라다. 그래서인가. ‘디지털 쉼표’ 정책이 그들에게 안겨줄 선물(?)이 더 궁금해진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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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10.29 14:55

지방대 기초학문의 부고(訃告)

죽었다. 죽어가고 있다. 서글픈 부고장이 날아온다. 지방대 기초학문의 현실이다. 대학도, 지역사회도, 정부도 관심 밖이다. 아니다. 오히려 그 죽음을 부추기고 있다. ‘사회학과,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대구대학교 사회학과가 최근 부고장을 돌렸다. 대학본부에서 2025학년도 학칙 개정안을 통해 사회학과 폐과를 결정하자 다음달 초 ‘학과 장례식’을 열기로 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신입생 모집난이 가중되면서 각 대학이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 위주로 속속 학과 개편을 추진했고, 이는 기초학문과 인문·사회계열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신입생 모집난이 더 심각한 지방대에서 두드러졌다. 전북지역에서도 사회학과는 전북대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모든 학문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철학’과 기초과학의 핵심인 ‘물리학’은 국립대인 전북대와 군산대에서만 겨우 살아남았다. 교육부의 정책 방향도 기초학문과 인문·사회계열의 위기를 부추겼다. 정부는 ‘지방대 살리기’ 정책을 요란하게 추진하면서 막대한 재정지원을 미끼로 지역산업과의 협력, 취업 중심의 구조개혁을 대학에 요구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지방대로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구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요구한 구조개혁은 ‘학문의 전당’이었던 상아탑을 취업학원으로 바꿔놓았다. 게다가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 확대를 권장하면서 기초학문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수십 년간 ‘지방대 살리기’ 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대학혁신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해묵은 과제는 그대로 남았다. 사업 명칭만 바뀔 뿐 접근방식은 차이가 없었고, 뚜렷한 성과도 없었다. 현 정부는 ‘글로컬(Glocal) 대학’ 육성 사업을 내놓았다. 백약처방에도 불구하고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대를 어떻게 단기간에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 지역성장을 이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지방대의 살 길’은 변함이 없다. 외국의 성공사례를 가져와 대학에 제시하면서 지역 및 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당장 열매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학에서는 썩어가는 뿌리를 살펴볼 여유도 없이 이리저리 바람을 따라 잔가지를 뻗어내면서 속빈 열매라도 만들어내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렇다면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역할은 수도권 대학에 맡겨 놓고, 지방대는 산학협력에 초점을 맞춘 전문 취업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몰두해야 할까? 아니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변수와 위기에 대응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기초학문의 바탕 없이는 취업 중심의 응용학문도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기초학문의 부고가 이어지면 머지않아 그 대학의 장례식날이 올 수밖에 없다. 지역과 대학의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래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최소한 국립대만이라도 이런 칼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상아탑의 본분을 끝까지 지켜냈으면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10.28 17:32

먹구름 벗어난 전북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대로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도와준다. 22차 한상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 잼버리로 국제적 망신을 산 전북의 이미지를 말끔하게 떨쳐 냈다. 지난해 새만금에서 치러진 잼버리는 책임주체가 불분명한 가운데 전북도가 개최지였다는 점 때문에 혼자 독박을 썼다. 그 이후 한상대회를 유치한 전북은 소리 소문 없이 준비에 박차를 가해 성공적으로 대회를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개최지를 무형문화유산원에서 전북대로 옮겨 전북대가 글로컬 대학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우리의 푸른 가을 하늘은 원더풀 코리아로 전 세계인이 감탄한다. 하지만 그렇게 소망했던 개막일 날씨가 짓궂게도 가을비 우산속이 되어 대회 관계자를 긴장시켰다. 행사는 날씨가 좌우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그날 축하객 중에 잼버리 기간 중 화장실 청소를 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전북출신 한덕수 총리가 참석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다행히도 대회준비로 땀 흘렸던 전북도의 모습에 화답이라도 한양 이튼날부터 파란 하늘이 선보여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패기로 도정을 꾸려가는 김관영 지사도 이번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더 자신감을 갖고 여의도로 외국으로 기업유치를 위해 뛰어 다녀야 할 것이다. 김 지사는 잼버리 개최 전만해도 기세가 등등해 각종 공모사업에서 직접 프리젠테이선을 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나무 한그루 없는 간척지에서 5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함께 야영대회를 연다는 것은 사전 계획하에 준비를 철저하게 했어야 옳았다. 그늘을 만들기 위해 사전에 에어돔을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묵살되어 결국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 지사만 억울한 꼴을 당했다. 전북도가 이번 한상대회를 유비무환정신을 상기하면서 현장에서 준비에 박차를 가했던 것. 특히 김종훈 경제부지사가 현장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선을 다해서 준비에 만전을 다한 결과가 결국 빛을 발했다. 전북도는 이번 한상대회 개최를 계기로해서 전북의 산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그간에는 우물안 개구리 마냥 방안퉁수 신세를 벗질 못했다. 그러나 김 지사가 취임초부터 도전경성이란 사자성어를 캐치플레이즈로 내걸고 도전하자고 독려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놀드 토인비가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말했듯이 도민들도 용기를 내서 두려워 하지 말고 도전해 나가야 한다. 이제 전북은 나락으로까지 떨어져봤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두려움부터 갖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름 없다. 타이거 우즈는 나는 경기할때마다 항상 힘들었다. 그러나 견뎌 낼 정도의 고통이었다고 말했듯 도민들도 냉소주의와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고 실제로 부딪쳐야 할 것이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들도 대안 없는 반대만 일삼아선 안된다. 인구감소로 줄어드는 도세확장을 위해 정치권부터 자신감을 갖고 전북몫을 확실하게 챙겨와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10.27 18:13

완주 전주 통합의 물꼬

완주 전주 통합에 찬성하는 완주지역 6개 단체(완주군민협의회)가 상생 발전 방안 107건을 마련해 전주시에 제안했다. 사실상 내년 주민 찬반 투표 여부를 앞두고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협상의 물꼬를 튼 셈이다. 일단 공식적으로 제기된 사안인 만큼 협상의 기대감과 함께 완주 반대 단체의 입장 정리가 주목된다. 며칠 전에도 대구 경북의 광역단체간 통합이 현실화 되면서 이번 통합 절차에 대한 압박 강도가 세지고 관심도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생안이 그동안 통합 논의 과정에서 껄끄럽게 여겼던 핵심 사안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진일보한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 꽉 막혔던 찬반 양측의 협상 테이블에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통합시 명칭과 관련 절차를 거쳐 완주 군민이 최종 결정해 그 지역의 정체성을 담보하려는 제안이 눈에 띈다. 한 가지 더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통합 협상을 좌우하는 완주 지역 지방 의원의 신분 보장이 고무적이다. 통합 이후 12년간 현 완주군의원 11명의 지역구 유지를 공식화해 그들의 자존감을 지켜줬다는 것.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시의회 전반기 의장과 후반기 부의장을 완주 출신 의원 몫으로 쐐기를 박은 것도 불확실한 정치 진로에 대한 이들의 고민을 담은 것이다. 통합시와 시의회 청사의 완주 신설도 마찬가지다.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완주 지역 정치권 반응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이밖에 정부의 통합 장려금을 완주에 전액 투자하고, 전주시설공단과 농수산물도매시장 등도 옮기자고 제안했다. 성도경 공동대표가 밝힌 것처럼 전체적 틀에서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 했지만, 완주 군민의 의견을 담는데 공을 들였다며 상생 발전안 의미를 부여했다. 협의회는 2013년 청주 청원 통합에 앞장섰던 단체와 언론 관계자를 초청해 의견을 나눴다. 청주 상생안 5개 분야 75개 과제 보다 촘촘하게 12개 분야 107건으로, 상생 유지 기간도 2년 늘려 12년으로 정했다. 협의회는 상생 발전안 전달과 동시에 민간 주도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시민협의회 구성을 전주시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3차례 통합 무산의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완주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완주 군민 이익과 지역 발전이 더 후퇴한다는 명분으로 반대 투쟁을 이어왔던 그들의 정치 생명과 직결된 지역구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해 관계와 완주 미래 발전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대화의 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지방의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안호영 의원 의중이 사실상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남의 3선 국회의원인 그 자신도 향후 정치적 선택지가 도지사 설욕전 말고는 불투명하다. 그마저도 완주 전주 통합 여부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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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10.24 18:22

십상시와 만사형통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린다는 뜻의 만사형통 (萬事亨通).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한자를 바꿔서 '만사형통(萬事兄通)' 이라고 했다. 모든 일은 형을 통하면 다 된다는 얘기다. 바로 23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보이지 않는 힘을 비유한 단어다. MB때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였다. 13∼18대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7대 국회때 국회부의장을 역임했으나 그의 부침은 권력무상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비선실세의 권력남용이 계속됐을때 그 끝이 어떤 것인지는 양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그 사례가 너무나 많은데 사람들은 부나방처럼 과거를 잊고 똑같은 실수를 하는것 같다. 비단 국가운영에 국한하지 않는다. 크고작은 조직 어디에서든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자행되곤 하는데 그 끝은 결국 자신과 조직을 함께 파멸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공이 없는 자에게 상이 주어지고,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 자리가 주어졌을때 일어나는 불행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189년)에 발생한 십상시의 난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경종을 울린다. 철없는 어린 황제를 조종해 부패한 정치를 행한 환관 집단은 몰락의 길을 걷던 나라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게 된다. 간신이자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바로 십상시다. 실세 환관들은 황제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다. 세상 물정 모르는 황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의 측근들로 국정을 농단하는 이들을 일컬어 십상시라고 한다. 박근혜 정권때 십상시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문재인 정권때는 일각에서 탁현민을 십상시로 지목하기도 했고, 어김없이 윤석열 정권에서도 십상시 논란이 일고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김건희 여사와 그 측근들의 비선 논란이 연일 정쟁의 한 중심에 섰다. 급기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최근 공개된 녹취록에서 일부 ‘김건희 라인’을 거론하며 “용산은 ‘십상시 같은 몇 사람 있다”고 주장, 메가톤급 파문을 몰고왔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의아하게 여기는 일이 자행되는 배경에 십상시의 농단과 술수가 자리잡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극과 몰락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5월 김종인 전 공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사이를 가수 조용필의 노래 '허공'에 빗대 눈길을 끌었다. '돌아선 마음 달래 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라는 가사처럼 "되돌릴 수가 없는 상황"까지 됐다는 거다. 1985년 말 발매된 '조용필 8집' 앨범 타이틀곡 '허공' 끝 부분을 보자.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귀결될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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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10.23 15:12

<열녀춘향수절가>와 전주

방각본(坊刻本)은 조선 시대에 민간에서 판매하기 위해 간행한 책을 이른다. 조선 중기에 등장했으니 그 역사는 400여 년을 훌쩍 넘는다. 당시 방각본 출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은 서울과 전주, 안성 정도다. 책 보급이 활발했던 상업지역이거나 종이가 생산되었던 지역이다. 초기에는 교육과 경전, 의학이나 농사법, 관혼상제 등 실용서가 주를 이루었지만, 후에는 소설류까지 확장됐다. 특히 한글을 새겨 찍어낸 방각본 소설들은 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춘향전>은 가장 많이 읽고 즐겨 찾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방각본 <춘향전>은 소설류 중 조금씩 다른 내용의 이본(異本)이 가장 많다. 그 수많은 이본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 책은 전주에서 만들어진 완판 방각본 <열녀춘향수절가>다. 서포라 불리었던 전주의 책방에서 제작된 완판 방각본은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전주의 서포들은 다양한 종류의 책을 출판했지만, 그중에서도 한글 고전소설류는 그 규모나 내용이 서울에서 만들었던 경판본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유행했다고 전한다. 자료에 따르면 완판 방각본 고전소설은 20여 종. <열녀춘향수절가> <심청가> 등 판소리계 소설이 주를 이룬다. 전주의 출판문화 궤적은 넓다. 방각본에 앞서 조선 시대 서적 간행을 주도했던 것은 중앙기관과 각 지방의 감영이었다. 전주에 있던 전라감영에서도 많은 책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완영본이다. 전해지기로는 조선 후기에만 전라감영에서 90여 종, 수많은 책이 만들어졌다. 그 책을 만드는 데 쓰였던 재료의 풍요로움과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수들의 기량이 민간에도 영향을 미쳐 완판 방각본의 발전을 이끌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전주의 풍요로웠던 출판문화를 증명해주는 유산, 전라감영에서 만들어진 완영책판 목판의 존재다. 이들 목판은 쓰임을 다하자 1899년 전주향교로 옮겨졌다. 당시 그 분량은 1만5천여 점.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수가 소실되었고, 이후 향교에 장판각을 지어 보관했으나 그 과정에서도 훼손되어 지금은 5천 여 점이 남았다. 이들 책판은 2004년,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전북대 박물관에 위탁되어 보관 중이다. 책을 찍어냈던 목판본은 적지 않으나 감영 책판이 이처럼 다량으로 남아있는 것은 완영책판이 유일하다. 그만큼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때마침 전주의 출판문화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선의 베스트셀러 한양가와 춘향전>으로 만나는 전주의 출판역사, 들여다보니 그 면면이 빛나는 이유를 알려주는 이 전시회가 반갑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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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10.22 14:36

장수도시, 건강도시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인류의 오랜 꿈이다. 생활환경 개선과 의료기술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류는 마침내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각 지자체가 앞다퉈 ‘건강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발족한 ‘대한민국 건강도시협의회’의 회원도시만 해도 103곳에 이른다. 전북에서는 무주와 장수·진안·군산·남원 등 5개 시·군이 속해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건강도시의 개념을 ‘도시의 물리적·사회적·환경적 여건을 창의적으로 개발해 나가는 가운데, 지역사회 주체들이 협력하여 시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도시’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장수도시’가 곧 ‘건강도시’일까? 100세를 넘겨서도 건강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은 세계적인 장수도시는 오래전부터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인류의 꿈인 무병장수의 비결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 도시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식습관, 생활방식 등을 살펴 그 비밀을 찾으려 했다. 지구촌 대표 장수도시로는 ‘블루존(Blue Zone)’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사르데냐·코스타리카 니코야·그리스 이카리아·일본 오키나와·미국 로마린다 지역이 꼽혔다. 국내에서도 100세 이상 인구가 많은 장수도시 순위가 언론에 잇따라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2022년 기준으로는 무주군, 그리고 2023년 기준으로는 전남 고흥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도시가 정말 건강한 장수도시일까? 2022년과 2023년 기준, 100세 이상 초고령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힌 상위 10곳은 모두 도시지역이 아닌 군(郡) 단위 지방 소도시다. 인구감소로 지역소멸 위기가 심각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북에서는 무주와 고창, 장수군이 포함됐다. 저출산 기조 속에 청년인구 유출이 지속되면서 100세 이상을 포함한 노인인구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지역을 과연 장수도시, 건강도시라 할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세계 최고의 장수촌’으로 인정받아 이름을 날렸던 일본 오키나와는 2000년대 들어 평균수명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옛 명성을 잃고 ‘단명도시’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최근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힌 무주와 고흥도 인구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평균 연령도 아니고, 100세 이상 초고령 인구 비율이 높다고 해서 그곳을 장수도시, 건강도시로 부를 수는 없다. 생활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시민의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곳이 바로 건강도시다. 시민 모두의 건강한 삶을 목표로 보건·의료를 비롯해 환경, 복지, 교육, 문화, 교통 등의 분야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발굴·추진하면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 바로 살고 싶은 ‘건강도시’ 아니겠는가.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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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10.21 18:22

시험대에 선 도내 국회의원

도민들은 21대 의원을 지낸 6명을 지난 4.11 총선 때 다시 여의도로 보내줬다. 지난 21대 때를 가장 약체라고 평가하고 그 보강책으로 정동영 이춘석의원과 전문성이 확보된 이성윤 박희승의원으로 전북정치권을 꾸려줬다. 5선 1명 4선 1명 3선 3명 재선 3명 초선 2명으로 꾸려진 라인업은 외견상 봤을 때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드림팀처럼 보였다. 거의가 친명계인데다 당 살림을 관장하는 3선의 김윤덕의원이 사무총장까지 맡게 돼 원팀으로 결속만 잘 하면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전북은 지난해 잼버리 대회 때문에 정부와 여당인 국힘측으로부터 각종 수모를 당하면서 급기야 국가예산 삭감이란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광역도중 유일하게 전북만 국가예산이 삭감돼 사상 처음으로 2024년도 예산을 마이너스로 편성했다. 심지어 새만금관련예산은 정부예산안에서 78%를 삭감,사실상 사업을 하지말라는식의 예산안이 편성돼 도민들의 자존심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하자 애향운동본부를 중심으로 모처럼만에 출향인사들까지 합세해 5백만 범도민들의 분노의 함성이 여의도 하늘에 울려퍼졌다. 당시 전북정치권에 똑똑한 의원이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이 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국힘쪽에서 전북정치권을 같잖케 여겼기 때문에 예산삭감이란 굴욕스런 상황을 만들었다. 불과 1년전이라서 지금도 도민들의 뇌리에 치욕스런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문제는 감사원에서 잼버리 감사를 했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면 될 것을 마치 전북도가 모든 것을 잘못한 것처럼 뒤집어 씌워 예산삭감으로 책임을 물은 건 잘못된 판단이다. 도민들은 그 당시 분노가 끓어올라 현역들을 전원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예산이 복원되면서 미웠던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그 때 현역의원 6명이 의정활동을 잘해서 다시 뽑아준게 아니라 미워도 다시한번이란 노래 제목처럼 더 잘하라는 뜻으로 기회를 준 것이다. 익산에서 연속 3선했다가 21대 때 낙선의 쓴잔을 마시고 권토중래한 이춘석의원이 송곳질문과 대책을 박상우 국토부장관 한테 따져 묻는 바람에 도민들이 모처럼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특히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때 전북한테 엄청난 차별과 불이익을 안겨줬다고 지적, 그 대책으로 대광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바야흐로 야당의원의 시간인 국감철이 돌아왔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국감스타의원이 되면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가예산확보도 용이할 수 있다. 그간 김관영지사가 전방위로 국가예산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도내 출신 10명의 국회의원 협조 없이는 지난해 9조보다 1조 늘어난 10조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박지원 의원이 지휘하는 광주 전남도 의원처럼 일사분란하게 원팀으로 움직여야 가능성이 보인다. 공정과 상식을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윤석열정권이 특검정국에 발목 잡혀 국정운영을 제대로 못하지만 전북은 지역불균형 해소차원에서 목표를 꼭 달성해야 한다. 5선의 정동영의원이 그 중심에 서야 하는데 모두가 각개약진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10.20 18:37

남원 경찰학교 유치에 담긴 '균형 발전'

남원이 유치전에 뛰어든 제2중앙경찰학교는 영호남 상생 발전의 축이다. 여기에는 지역 균형 발전의 절실한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하지만 그간 공 들였던 공공의대 유치를 둘러싸고 소모전을 겪은 터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시민들 움직임이 조직화되는 가운데 영호남 6곳 시도 지사가 공동성명을 통해 지지 의사를 밝힌 뒤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소멸 위기에 직면한 안타까운 지역 현실의 탈출구로 경찰학교 유치를 정조준 한 것이다. 1차 관문을 통과한 3곳의 후보지 중 남원 운봉은 입지 조건이 뛰어나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2 공공의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도적이고 응집력있는 추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달 초 최종 선정을 앞두고 가장 큰 변수는 입지 경쟁력을 꼽고 있다. 운봉의 경우 기획재정부 소유의 유휴지인데 반해 충남 아산시와 예산군은 국유지 비율이 절반을 밑돌아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 운봉은 이런 점에서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 부합하고 신규 사업 예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경찰청 입장에서도 최적의 조건이다. 남원시도 이 점에 주목하고 우선적으로 별도의 행위제한 없이 신속 개발이 가능한 부지를 물색해 왔다. 그러면서 전국 교육생들의 교통 편의와 접근성에도 차별화를 꾀했다. 남원은 KTX와 SRT의 고속 철도 접근이 쉽고, 88 고속도로와 완주 순천 고속도로가 접해 있어 교통 요충지로 꼽힌다.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은 수도권 편중 해소를 뛰어 넘어 지역 균형 발전에 초점이 맞춰 있다. 현재 충주에 있는 본교의 기능 분산을 포석에 두고 신설되는 제2중앙경찰학교도 이런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경쟁 후보지 충남 아산에 경찰대, 경찰인재개발원이 들어서 있는 데다 같은 충청권에 중앙경찰학교까지 몰려 있어 가급적이면 충청 이남 분산 배치가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영호남 6곳 시도지사도 이런 지방 균형발전 기조에 공감을 표시하고 남원이 그 취지에 부합된다며 찬성 의사를 밝힌 것이다. 지금도 산업 교통 인프라가 풍부한 수도권 쏠림 현상이 뚜렷한 상황에서 균형 발전 의미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남원은 지난 2018년 폐교한 서남대의 후폭풍이 지역 사회 전체를 집어삼켰다. 하루아침에 학생 교직원 1000명 이상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서 주민들은 멘붕에 빠지고 경제는 활기를 잃고 침체를 거듭해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공공의대 유치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의 희망 고문이 6년간 이어지면서 깊은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연간 5천명을 교육하는 경찰학교 유치도 결국 주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고 지역 발전의 모멘텀을 함께 만들어 가자는 취지다. 덧붙이면, 과거 남원의 영광을 되찾자는 일종의 재도약 선언인 셈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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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10.17 17:44

위원장 없는 새만금위원회

대한민국 국책사업 중 예산 규모나 향후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감안할때 가장 굵직한 것을 든다면 단연 국토 서부권의 새만금사업과 동부권의 부산 가덕도신공항이 꼽힌다. 그런데 새만금사업은 제대로 추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중단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새만금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의사결정 기구인 새만금위원회의 운영실태를 보면 가관이다. 민간위원장이 무려 8개월째 공석 상태다. 새만금위원회는 새만금사업의 효율적인 개발, 관리 및 환경보전 등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2009년에 설치된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이 공동으로 맡게 되는데 총리는 행정부를 총괄하는 입장인지라 민간위원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임 박영기 위원장이 지난 2월말 임기가 끝났기에 후임자를 진작 임명했어야 하나 어느 누구하나 챙기는 사람이 없기에 공백상태가 장기화 하고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이승우 전 정무부지사가 새만금위원장 후보군으로 유력하게 물망에 올랐으나, 김대기 비서실장이 물러나면서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후 지역정가에서는 김홍국 하림회장의 이름이 거론됐으나 대기업 총수가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새만금위원장을 맡는 것은 어색하다는 판단으로 인해 없던 일이 됐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누구도 새만금위원장을 챙기는 사람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자칫하면 이런 상황이 올해는 물론, 내년 초까지 계속될 소지가 커 보인다. 역대 전북지사를 지냈던 강현욱, 조남조씨를 비롯해 관료 출신인 이연택, 오종남씨, 학계 출신인 소순열, 박영기씨 등이 위원장을 맡았으나 지금같은 위원장 장기 공백 사태는 없었다. 공동위원장인 총리가 있다고 하지만 총리는 회의 참가조차 어려워 당연히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기에 주요 안건은 전체 위원회에 상정해서 논의할 수 조차 없는 구조다. 새만금위원회는 새만금사업 관련 중요 의사결정 사항을 심의하고 기본구상, 기본계획 등을 심의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새만금 내부개발 기본구상 및 종합실천계획안은 물론, 새만금 종합개발계획(MP) 수립 추진상황 등도 당연히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결하고 그 기조하에서 새만금개발청이나 개발공사는 실행을 하는 시스템이다. 하나를 보면 열가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국정감사에 이어 진행될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새만금 관련 예산이 얼마나 확보될지가 도민들의 초미 관심사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위원장이 8개월째 공석인 사태, 이게 바로 오늘날 단군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새만금사업의 현주소다. 당장 새만금위원장을 새 인물로 임명해서 공백 사태를 치유하는게 지금 대통령실이 할 일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10.16 14:44

번역의 힘과 국가의 역할

서점가가 뜨겁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몰고 온 독자들의 행렬 덕분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주목받는 것은 또 있다. 번역의 힘이다. 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즈음해서도 번역가의 역할은 큰 관심을 모았다. 데보라 스미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30대의 영국 번역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직업으로 번역가를 선택하면서 번역가가 거의 없던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소아스런던대학 에 들어가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채식주의자>는 그의 첫 영문 번역소설이다. 한국어를 배운지 3년 만에 이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 그는 한강의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 등도 번역했다. 이중 <흰>은 부커상을 수상한지 2년 만인 2018년, 다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화제가 됐다. 2016년 <채식주의자>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던 뉴욕타임스는 한강과 함께 부커상을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의 품격 있는 번역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부커상을 수상한 그해, 서울국제도서전 초청으로 서울에 온 그는 인터뷰에서 “더 많은 한국문학이 좋은 번역으로 해외에 나가야 하지만 노벨문학상에 대한 한국사회의 집착은 당황스럽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경란과 피에르 비지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공동 번역한 번역가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프랑스어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로 번역되어 지난해에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올해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안겼다. 1990년대부터 번역을 시작한 최경란은 초기에 주로 프랑스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나 김영하의 소설을 계기로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출판업에 종사해온 피에르 비지유는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등을 이미 자신의 출판사에서 프랑스어로 출간했을 정도로 한강의 소설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번역가이자 출판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의 힘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작가들이 국제적인 문학상을 받으면서 번역에 관심이 커지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한국문학 번역의 물살이 밀려오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다. 들여다보면 한국문학 번역을 이끌어온 것은 문화체육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과 교보생명의 대산문화재단이다. 그러나 시작은 국가기관이 아닌 대산문화재단이 먼저였다. 이제 세계가 한국문학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을 위해서는 번역의 힘이 필요하다. 번역의 동력을 키우는 일, 국가의 역할이 명료해졌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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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10.15 15:52

식품사막의 오아시스와 신기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서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에 쓰인 우리 속담이다. 통신시설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친구를 만나기 위해 큰 맘 먹고 먼 길을 떠났는데 하필 그날이 장날이라 헛걸음을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이 서는 날이면 으레 마을 사람 대다수가 장터에 나가 집을 비우게 되는 상황이 속담의 배경이 됐다. 오일장은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고파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녹아있는 특별한 활력공간이었다. 그 시절 농촌 사람들에게 최고의 휴식·여가공간이자 소통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 냄새 풀풀 나던 ‘오일장(五日場)’이 사라지고 있다. 농촌에 사람이 없어서다. 정부가 오일장이 서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을 쏟아냈지만 썰물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사업’을 비롯해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사업’ 등에 기대가 컸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런 가운데 농어촌지역 ‘식품 사막화’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신선하고 건강한 식품을 판매하는 식료품점까지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일컫는 식품사막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오일장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농어촌 주민들은 식료품 구입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 주민 삶의 질 유지를 위해 대책이 필요했다. 정부에서 지난 7월 그 대책을 내놓았다. ‘가가호호 이동장터’다. 식료품과 공산품 등을 실은 특장 차량이 농촌 마을을 찾아가 생필품 구입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사막으로 변하는 농촌에 이동식 오아시스를 만들어주겠다는 발상이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가가호호 이동장터’사업을 통해 지역의 식품사막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동장터가 정부와 각 지자체의 기대대로 식품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껏 추진해온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처럼 현실성이 떨어지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까? 지속가능성이 낮다. 식품 사막화는 결국 농촌 인구 감소가 근본 원인이고, 지방소멸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지금 우리 농촌은 식품 사막화가 아니라 그냥 황량한 사막이 되는 게 문제다. ‘농촌의 사막화’가 어찌 식품뿐이랴. 학교도 어린이집도, 약국도, 파출소도, 버스터미널도, 금융기관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결국 문제는 ‘지방소멸 위기’로 귀결된다. 돌무더기로는 썰물을 막지 못한다. 앞으로도 시골 마을에 식료품 상점이 새로 들어서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구절벽 시대, 지금도 진행형인 ‘농촌 엑소더스’ 행렬을 마주보며 마을로 들어오는 식료품 트럭으로는 오아시스를 만들 수 없다. 먼저 농어촌 면 소재지의 공공 인프라를 강화해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라져가는 오일장이 활력을 되찾는다면 이게 바로 식품사막의 오아시스 아닐까.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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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10.14 17:17

안호영의원이 통합키맨

1997년 이후 4차례나 시도했던 전주 완주 통합 문제가 어떤 결말이 날지 주목된다. 내년 5월 주민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여론의 흐름은 반대가 앞선다. 그 이유는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 반대로 3차례나 무산된 것보다 완주군민들의 반대강도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전주 쪽에서 강하게 찬성 드라이브를 걸면 완주쪽 반대가 더 높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찬성 하지만 완주군은 군의원과 각급 사회단체가 반대대책위를 구성해서 읍면별로 죽기살기식으로 반대에 나선다. 이 때문에 찬성 측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반대측의 반발만 사 자칫 소모적 논쟁으로 그칠 공산이 짙다. 특히 김관영 지사가 인구감소를 통한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공약으로 통합을 제시했지만 완주군민들의 반발이 거세 지난 7월 31일 심지어 군민과의 대화 장소에 입장도 못할 정도였다. 사실 그간 완주군민들은 피해의식이 너무 커 전주시가 제시한 상생사업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 특히 찬성을 유도하려고 통합 때 제시했던 사항들이 사탕발림식이었다고 인식해 찬성여론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3년 3번째 무산된 이후 10년 가까이 전주시가 통합을 위해 노력한 게 가식적이고 진정성이 없었다면서 오히려 주민갈등만 부추겨 놓았다고 비판했다. 지금 다른 시도가 파이를 키워나가려고 광역단체간 메가시티 통합 노력을 하지만 완주군민들은 인구가 늘어 10만이 넘었기 때문에 전주와의 통합보다는 시 승격이 더 지역발전에 도움된다고 믿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있는 인접 익산시와 통합을 모색하는 편이 실리적인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는 여론도 조성, 반대 강도가 과거보다 더 거세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 답답해진 것은 전주시다. 그간 인접 시군에서 자녀 교육문제로 전주시로 이사와 65만 인구가 유지 되었지만 지금은 아파트 분양가가 비싸 전주시민들이 완주쪽으로 옮기면서 인구가 줄고 있다. 전주완주 통합은 전북발전을 위해서도 더 이상 늦춰선 안된다. 양측이 윈윈할 상생방안이 먼저 도출되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흡수통합이 아닌 완주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갈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우선 통합청사를 완주군에 짓는다는 것을 공증해야 한다. 다음으로 통합시장과 통합의회 의장을 완주 출신이 맡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전주시에서 재정적으로 완주군을 지원하도록 특별회계를 설치해야 한다. 완주군을 구로 인정해서 그에 따른 각종 사회단체장도 그쪽에서 맡아 전혀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건은 안호영 국회의원의 협조 여부다. 지난 2013년 당시 최규성 전 의원이 지방선거 공천권을 무기삼아 군의원에게 반대토록 하면서 하루아침에 찬반이 뒤바꿔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재발 않도록 안호영 의원을 설득해야 한다. 현재 3선인 안 의원을 통합으로 4선 의원이 돼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도록 전주시민이 적극 도와줘야 한다. 도나 전주 찬성 측도 역지사지로 완주군민의 입장에서 통합 문제를 고민하길 바란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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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4.10.13 17:26

지방의원 후원금에 쏠린 우려

지방의회 의원도 지난 7월부터 후원회 등록을 통해 정치 자금을 모을 수 있게 됐다. 정책 토론회와 포럼을 개최해 시민들과 함께 정책 발굴 등 생산적 의정 활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 다만 이런 긍정적 측면도 간과할 순 없지만 겸직이 가능한 지방의원 지위로 볼 때 이해충돌 논란 등 적지 않은 문제점도 우려된다. 심심찮게 지방의회 무용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그간 행적에 비춰 보면 후원금을 둘러싼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의원 스스로 이 같은 우려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투명성 확보에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상 국회의원에게만 허용됐던 후원회가 지방의원까지 확대된 것은 이들을 제외한 정치자금법이 차별이라는 헌재 결정에 따른 것이다. 연간 모금 한도는 도의원 5000만원, 시군 의원 3000만원으로, 선거가 있는 연도에는 예외 규정을 둬 2배까지 모금할 수 있다. 도의원 40명 중 10여명 정도가 이미 후원회 설립을 마쳤고, 시군 의원의 경우 한자리수가 고작이다. 회계 책임자와 후원회 대표, 정관 등의 설립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모금 자체가 부담스러워 일단 관망세 기류가 뚜렷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뛰어난 정치 역량에 경제 형편이 어려운 청년과 신인에게 후원회 결성이 사다리 역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원 겸직에 따른 이해충돌 논란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에도 30명의 도의원이 다른 직업이나 직책을 갖고 있으며, 일정액의 보수를 받는 의원도 12명이나 됐다. 더욱이 연간 5000만원 넘게 의정활동비를 받는 이들에게 도덕성 시비를 불러일으킨 겸직도 모자라 후원금 모금까지 빗장을 풀어줌으로써 불씨는 더욱 커진 셈이다. 공무수행과 관련된 이해충돌 방지법이 2022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의사 결정에 부정 소지를 없애려는 당초 취지는 무색해졌다. 극히 일부지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려는 꼼수는 법으로 강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의원 스스로 청렴 의지를 갖고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이 최선이다. 지방의회 감시와 견제를 받는 공무원 입장에서 이들 의원과 맞서기란 쉽지 않다. 자치단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의 15%가 최근 1년 새 지방의원에게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는 게 권익위 설명이다. 다른 공공 부문 근무자에 비해 7배가 넘는 수치다. 실제 도내 자치단체 한 곳은 응답자의 37%가 경험한 시의원과 엮인 부정부패를 털어 놓기도 했다. 이처럼 역학 관계의 문제점이 누적돼 의원들에 대한 부정 이미지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의정활동비 셀프 인상을 강행했다. 이 같은 모럴 해저드의 상황을 막기 위해 촘촘하게 만들어진 투명성 제고의 견제 장치도 결국 제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후원금 모금이 그들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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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10.10 17:30

전주실내체육관 철거

가히 예산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요즘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핵심 정치쟁점 일부를 제외하면 국감에서 제기되는 사안의 대부분은 내년도 예산과 맞닿아 있다. 특히 관록있는 중진의원일수록 고도의 외곽때리기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관철시키는데, 이는 결국 내년도 예산안 확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단 한푼이라도 더 얻기위해 시도지사나 시장군수들은 요즘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선거 과정에서 큰소리 뻥뻥 쳤지만 결국 과거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임자에 비해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요즘 전주실내체육관 철거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됐다. 최악의 경우 어렵게 확보한 사업을 자칫 반납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주실내체육관 철거 지연으로 인해 캠퍼스 혁신파크 조성사업이 중단 또는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만일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전북대나 전북도, 전주시 등은 향후 국토부, 교육부, 중기부의 재정지원사업 수주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불문가지다. 이 사업은 전국적으로 총 9개 대학이 선정됐는데 전북대의 경우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총 510억원을 들여 대학캠퍼스내 유휴공간을 도시첨단산업단지로 조성, 산학연 혁신허브, 즉 기업입주공간으로 만드는게 골자다. 사업참여자인 LH 본사는 지난달 체육관 철거일정을 명확히 해줄것을 요청했다. 전주시와 전북대 간 협의완료 후 결과를 송부해달라는 거다. 체육관의 계속사용은 당해사업 취지에 맞지않는 만큼, 지장물 철거일정이 불학실하면 기본협약 체결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주시는 현재 체육관 존치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LH가 사업성 악화를 이유로 축소해서 일부 부지만 조성하거나 최악의 경우 예산을 반납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혁신파크가 완공돼 기업이 입주한다면 전북대 구정문 일대 상권이 살아남은 물론, 산학관 협력 생태계 구축으로 인해 기업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도 확립됨은 물론이다. 전북은 지금 속된 말로 찬밥 더운밥 가릴때가 아니다. 교육과 일자리 창출 여부에 인구감소 위기 탈출 여부가 달려있는 상황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0월 실내체육관을 철거해야 했으나 전주시는 체육관 신축공사 절대공기및 프로농구를 이유로 이를 늦추기로 했다. 결국 실내체육관 철거 문제가 걸림돌이 돼 기본협약 체결이 지연되고, 사업추진이 멈춰섰다. 지난달 19일 국토부, 전북대, 전북도, 전주시 회의에서 국토부측은 사업중단 우려를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캠퍼스 혁신사업 총사업비 510억과 교육부 대학 산학연협력단지 조성사업비 80억원이 중단 또는 취소될 수 있는 지경이다. 산토끼 잡기전에 집토끼부터 잘 단속해야 한다. 새로운 사업예산 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렵게 얻은 것을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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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10.09 19:06

잊혀진 계절, 사라진 풍년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상고온으로 유난히 늦게 찾아온 이 계절이 그리 오래 머물 것 같지 않다.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남자의 계절, 사색의 계절, 낭만의 계절⋯.’ 가을은 수식어가 참 많다. 이 중 가장 익숙한 표현은 역시 ‘결실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 수식어가 잊혀져 간다. 가장 큰 결실로 꼽혔던 농가의 ‘벼 수확’이 그 의미와 상징성을 잃어버렸다. 수확의 기쁨이 희석되면서 ‘결실’의 의미가 무색해졌다. 추수철, 우리 농촌에 비상이 걸렸다. 벼멸구가 기승을 부리면서 황금 들녘 곳곳이 멍석처럼 누렇게 말라버렸다. 폭락하는 쌀값 걱정 속에 수확을 눈앞에 두고 ‘벼멸구의 습격’을 받은 농민들의 한숨이 더 커졌다. 물론 정부가 농가 손실을 최소화하고 저품질 쌀 유통을 막기 위해 농가가 희망하는 경우 벼멸구 피해 벼를 매입하기로 했지만, 안정적인 영농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에 따라 농부들의 희비가 엇갈렸을 시기다. 그런데 벼농사를 지은 농부도, 쌀 소비자도, 우리 사회도 풍년 여부에 별 관심이 없다. 올해 극심한 벼멸구 피해를 입었어도 흉년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단지, 병해충 피해 농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뿐이다. 민족의 목숨줄이었던 쌀이 어느 순간 공급과잉으로 바뀌면서 정부가 ‘쌀 생산 감축’, ‘벼 재배 억제’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쌀 풍년이 그리 반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풍년 농사를 지어도 웃을 수 없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전례 없는 풍년이 수년간 지속되어도 풍년가는 들리지 않고, 창고에 쌓인 벼 가마 높이만큼 한숨이 쌓인다. 아기 울음소리 그친 지 오래고, 그나마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로 간신히 공동체를 지켜내고 있는 우리 농촌이 위태롭다. 밥상 물가가 다 올라도 쌀값은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농가에서 풍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어졌다. 정말 소중한 것인데도 풍족할 때는 모르고 있다가 잃거나 부족해져야 관심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3년 정도 연속 흉년이 들어 식량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때서야 비로소 ‘쌀 귀한 지’를 알고, 한 해 농사의 풍흉에 관심을 기울일 지도 모른다. 주식인 쌀의 중요성을 우리 국민도 한 번쯤 체감할 필요성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시대다. ‘농촌 없는 도시, 농업 없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지방소멸의 비극이 농촌에서 곧 시작될 것이다. 이 ‘상실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정부와 관련 기관·단체가 쌀 소비 확대 방안을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농촌소멸, 국가소멸을 부를 수 있는 ‘쌀의 위기’ 해소 방안을 찾아 우리 농촌에 다시 풍년가가 울려 퍼질 날을 고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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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10.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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