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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글소리 나는 곳을 찾아간 임금 - 강병원

강병원(의식개혁시민연대 대표)

 

조선조 제9대왕 성종(成宗)은 덕종의 둘째 아들로서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관후인자하며 지혜롭고 호탕함이 왕실에서 으뜸인 터였다. 성종은 1457-1494년까지 재위하셨는데 애민선정을 베풀어서 후세에 명군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임금 성종은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을 때, 주위에서 걱정하여 친히 섭정(攝政)하여 정사를 도왔으나 곧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성종은 원활하고 영특하셨다고 한다. 평소에는 학덕을 숭상하고, 서예와 서화의 수련에도 열중하셨다.

 

임금 성종(成宗)은 어느 날 달 밝은 밤에, 망루에 올라 바람을 쏘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옥을 굴리는 듯 청아한 글소리가 들려 왔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있다가 글소리 나는 곳으로 향하였다. 찾아가 보니 바로 <구종직> 이란 선비가 거처하면서 춘추좌전(春秋左傳)을 덮은 채 눈을 감고 줄줄 외는 것이었다. 성종은 익히 알기를 그 선비는 박학다식하고, 기억력이 좋은 선비로는 듣고 있었다.

 

이튿날 임금 성종은 <구종직> 을 불러 그에게 승지(承旨 : 승정원에 딸려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던 정3품의 당상관)을 제수 하셨다. 조정에서는 "등과도 안한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심은 관기문란의 소이가 된다"하여 연명으로 상소(上疏)를 올렸다. 상소를 받고도 무언중에 구종직을 다시 불러 예조참판에 임명하였다. 벼슬아치들은 변통이라고 여기고 다시 상소를 하였으나, 성종은 재차 한층 더 높이어 공조판서로 승진시켰다. 성종의 의중이 그러하온데 관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냈을 뿐이였겠지……. 만약 또 상소한다면 구종직은 마침내 <정승> 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간하는 일은 중지하자고 말을 모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얼마 간 뒤에 성종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춘추좌전을 강독하기를 명한 바 있었는데, 누구 하나 강(講)하겠다는 신하는 없었다. 성종은 구종직을 불러오게 하여 강하기를 명한 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줄줄 내려 외우니 놀랄 만큼의 경탄을 하였으리라 짐작이 간다.

 

강독이 끝난 뒤에 성종이 훈시하시기를 "무관은 활 잘 쏘는 것이 본분이듯, 문관은 글을 잘 하는 것이 본분이오." 또한 "글을 할 줄 몰라도 문벌만 좋으면 고관에 올라야 한단 법이 어디 있느냐 말이오." 부복하고 있던 신하들은 황공무지하여 몸둘 바를 모를 뿐이었다. 종국에 구종직은 벼슬이 우찬성(의정부의 종1품 문관벼슬)에 이르렀다.

 

현대 국가경영의 정부조직 기구에는 민정을 살피는 고위직인 관직도 다양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기구에도 민정과 서민정책을 관장하는 고위직 담당관은 있기 마련이다. 글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서 민생정책에 반영해야 할 어떤 과제를 탐색하여 민생정책에 반영했다는 사안들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살펴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강병원(의식개혁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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