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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수난 시대 - 최선욱

▲ 최선욱
아들 있는 집은 요양원에서 죽고, 딸 있는 집은 싱크대 밑에서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딸 잘 두면 비행기 탄다는 말도 이젠 한물갔나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짐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 중 가장 큰 일이 육아 문제 아닐까.

 

아이 낳기를 권하는 사회, 많이 낳을수록 박수받는 시대가 올 줄 예전엔 상상도 못 했다. 7, 80년대만 해도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이 표어가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맞벌이 부부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름지기 애국자라면 이대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어쩌다 아이가 셋만 돼도 비애국적인 처사로 남들이 손가락질하지 않나 눈치 보던 시대였다.

 

아들이 장가간 지 3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이 없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기다림 끝에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었다. 아기 돌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터, 한창 일할 나이에 일을 그만둘 수 없는 며느리는 아기를 안고 친정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인들 처가살이한다는 말 듣고 싶었겠으며, 며느리인들 친정어머니 고생시키고 싶었으랴. 그러나 눈 뜨고 코 베이는 서울살이에 아기를 믿고 맡길 만만한 대상이 친정어머니뿐이니 친정집으로 들어가는 일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은퇴하시니 심심하시죠? 주말에 아기 데리고 내려가도 돼요?”

 

손자를 보고 싶지만, 사돈집에 들락거릴 수도 없어 애태웠는데 아들이 우리 맘을 읽었는지 이제 막 돌이 지난 손자를 데려왔다. 걸음마를 배워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쉴새 없이 아장대고 다닌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지만 붙잡아 둘 수도 없다. 딴에 제 눈에 보이는 물건마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일 테니 만져보고 눌러보고 입에 대보고도 싶겠지. 외가에서 자란 손자는 우리 집에 와서도 낯가림 없이 잘 먹고 잘 놀았다.

 

“아기한테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얼굴도 익힐 겸 자주자주 내려와야겠어요.” 아들의 말이 살갑게 들렸다. 그리고는 주말마다 내리 5주를 거르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내려왔다.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주말의 이틀이 주중 닷새보다 길었다. 손주는 예쁜데 몸은 고단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했구나.

 

이젠 아들이 좀 뜸하게 오면 좋겠는데 노골적으로 말하면 상처가 될까봐 에둘러 표현했다.

 

“아들아, 일요일마다 애 엄마 없이 네가 아기 데리고 교회 가니까 남들은 부부싸움 하고 별거하는 줄 알겠다.”

 

며느리 하는 일이 주말에 더 바쁜 일이라서 우리야 이해하지만, 남들은 오해하기 딱 좋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제집에 오면 더 편한지 이젠 아예 아기를 내게 맡기고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 있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한다. 매일 밤 손주 때문에 잠을 설치는 사돈 보기도 미안한데 주말이라도 푹 쉬시도록 내가 주말 돌봄이 노릇이라도 해야겠다.

 

장모도 인생 즐길 권리가 있다고 ‘장모님 반란’이란 제목 아래 장모님 5계명이 실린 신문기사가 한동안 회자되었다. 처가살이가 대세인 요즘, 고부갈등이란 말 대신 장서갈등이란 새로운 용어가 뜨고 있다. ‘아들아, 내 대신 장모님께 효도하거라’ 장모님 수난 시대에 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이때,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한다는 말이 맞다. 아이를 낳으려 해도 양육할 자신이 없어 안 낳는다는 말이 엄살이 아니고 사실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기가 녹록하지 않은 시대에 이런 젊은이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지 않은 어른은 없다. 다만 진짜로 노쇠해가는 육체의 한계 때문에 주저할 뿐이지.

 

△최선욱 수필가는 2014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는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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