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1 19:19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전통 한지를 품은 프랑스 예술가, 전주에서 새 빛을 보다

프랑스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연 예술가로 활동 중인 피에르 파브르
프랑스 현지에서 이미 대형 전시를 잇달아 선보인 작가, 전통 한지 매력에 이끌려 전주 찾아
지난 9월부터 두 달간 전주천년한지관서 레지던시 참여해, 한지 제작 수학

피에르 파브르 작가/사진=독자

온화한 미소와 자근자근한 주름이 어우러진 그의 얼굴에는 오랜 창작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투박하고 거친 손끝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살아 있었다. 희끗한 머리칼이 세월을 말해주었지만, 눈빛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정으로 반짝였다. 프랑스에서 다수의 대형 전시를 선보여온 중견 작가 피에르 파브르(64)가 한국 전통 한지의 매력에 이끌려 전주를 찾았다.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83년 파리 페닝헨대학교를 졸업한 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연(凧) 예술가로 활동했다. 이후 파리 그랑팔레에서 첫 연 시리즈를 선보인 후, 2000년대부터는 바람·빛·중력 등 자연의 힘을 매개로 한 대형 키네틱(kinetic) 설치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작업은 가벼운 직물을 바람에 맡겨 공간을 춤추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임과 공간’이라는 테마 아래 프랑스 전역의 야외미술 프로젝트로 발전해 왔다.

설치작 ‘대기의 춤(The Dance of Air)’ 작품을 작업중인 피에르 파브르 작가/사진=독자

세상의 거의 모든 종이를 작품 재료로 다뤄온 그가 한지에 매료된 결정적 이유는 다른 종이와 달리 ‘천연 재료’를 활용해 만들어진 종이였다는 점이다.

작가는 “1990년대부터 연을 만들며 자연과 바람, 예술의 관계를 탐구했다”며 “실제 태국·중국·일본·한국 등지의 수제 종이를 접하며 종이의 무한한 가능성에 감탄했다. 하지만 합성 섬유를 사용한 작품이 많았고,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접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그때, 한지를 만나 탐구심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피에르는 전주의 한지 제작 현장을 둘러보며 닥나무 섬유가 지닌 ‘생명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지에 대해 탐구하던 중 한지의 본향인 전주를 찾아, 여러 한지 제작소를 방문하며 왜 한국산 수공예 종이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지 알게 됐다”며 “손으로 뜬 한지는 물과 바람을 견디며 ‘숨 쉬는 재료’였다”고 전했다.

한지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는 전주문화재단의 ‘K-한지마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선정돼 지난 9월부터 두 달간 전주천년한지관에서 한지 제작을 직접 배우며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피에르 파브르 작가가 직접 만든 ‘발’/사지=독자

작가는 손수 만든 독특한 ‘발’을 이용해 3D 형태의 한지를 제작했고, 전통 제지법으로 완성한 대나무·한지 결합 설치작 ‘대기의 춤(The Dance of Air)’을 선보였다. 다음 달 중순까지 전주천년한지관에 전시될 이 작품은 바람에 따라 유연하게 흔들리며 자연과 인간, 재료가 함께 호흡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전주천년한지관에 설치된  ‘대기의 춤(The Dance of Air)’/사진=전주천년한지관 제공

그는 “정지된 예술이 아니라, 바람에 따라 변화하며 관객의 영혼도 함께 움직이길 바랐다”며 “그 안에서 ‘의식의 계몽(enlightenment)’이 일어나길 기대했다”고 말하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처럼 파브르 작가에게 전주라는 고장은 예술과 장인정신이 공존하는 배움의 공간이었다.

그는 “닥나무 껍질을 벗기고 섬유를 손질하는 모든 과정이 숨겨진 헌신의 연속이었다”며 “장인의 손끝에서 진짜 예술이 태어난다는 걸 깨달았다”며 지난 2달간 수학 과정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한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피에르 파브르는 이제 또 다른 예술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지는 순수하고, 천 년을 견딜 만큼 강한 종이로, 단순한 재료가 아닌,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며 “보이지 않는 준비와 고된 과정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그것이 제가 한지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이자, 앞으로의 창작을 이끌 원동력이다”고 밝혔다.

전현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통 #한지 #프랑스 #전주 #전주천년한지관 #피에르파브르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