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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품격 있는 언어

예전에는 한겨울 농한기가 되면 사랑채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이 자리에 들려면 다들 한 마디식은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다양한 인사를 건네며 그 자리에 끼어들었다. ‘오늘은 날씨가 춥네’등의 날시나 동네 화젯거리를 건네며 그 무리에 합석을 하고는 했었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 농촌사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지금도 그리고 도시에서도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틈에 끼려면 좌중에게 한 마디 말은 건네야 정상인 것이다.

 

이러한 인사치레는 자신의 존재를 좌중에게 알리는 의식이다. 이와 비슷한 인사치레로 ‘어디 가?’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서로 지나치면서 건네는 이 말은 매우 형식적이다. 실제로 가는 곳이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유대감을 확인하는 의식일 뿐이다. 듣는 이도 이러한 의미를 잘 알기 때문에 굳이 이러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역시 의례적인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존재의 확인을 넘어 그 지위를 유난히 따지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높여줘야 하고 낮춰야 하는 관계가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자리매김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가 복잡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당신’이란 단어는 2인칭으로 자주 쓰이지만 3인칭 극존칭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드물게 쓰이는 ‘당신’이 마치 2인칭 평칭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그 스임이 현격하게 줄어 들었다. 듣는 사람이 3인칭 극존칭의 용법을 모르면 오해하기 십상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자기 아버지를 존재해야 하는지도 쉽지 않은 문제다. 듣는 할아버지를 생각한다면 낮춰서 표현해야 하지만 말하는 손자 입장에서는 아버지도 손윗사람이기 때문에 무작정 낮추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건값을 표현할 때 이런 경어체가 등장하는 특이한 경우도 있다. ‘이 물건이 싸세요’라는 표현은 분명 잘못되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물건을 높인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물건을 사는 고객을 높이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존대의 대상이 듣는 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품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언어도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바꾸는 주체는 우리들이다. 따라서 얼마나 품격있는 언어를 만들어 가느냐 하는 문제도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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