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23:31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자유인 김형곤

‘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로 시작하는 시가 떠오른다. 이 시는 ‘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웃지요’로 끝을 맺는다. ‘南으로 窓을 내겠소’라는 김상용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의 뜻풀이에 열중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백의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에 ‘문여하사서 벽산 소이부답심자한(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란 글귀가 나오며 그 풀이인 즉 ‘나에게 어찌 푸른 산에 사는가고 묻는다.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한가하다’로, 이런 표현과 김상용 시인의 시는 많이도 닮았다고 말이다. 사실 이쯤 아는 사람이면 김상용 시인이 이백의 시를 표절했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할 지도 모르겠다.

 

왜 사냐고 물을 때 그냥 웃는 사람이 중국에만 살았겠는가. 아마 유럽 어디쯤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있었을 법도 하다. 웃음은 마음이 즐겁거나 초연한 상태일 때 얼굴을 통해서 나타나는 표정이다. 이런 웃음을 포함한 쾌락은 크게 문학의 기능을 따질 때 등장하기도 한다. 문학의 쾌락설이 바로 그것이다. 쾌락설의 반대편에는 교훈설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작품을 읽고서 과연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딱 부러지게 답하기 어렵다. 재미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며 계몽적인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 전부는 또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세상을 떴다. 그의 직업상 당연히 웃기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 이전의 패턴과는 다른 무엇을 그는 가지고 나타났다. 현실풍자적인 모습이다. 회사의 사장역을 맡아서 ‘잘 돼야 할텐데’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한 그는 극 중의 웃음이 현실화되기를 바랐던 희극인이 아닌가 싶다. 그의 말 속에는 웃음과 함께 현실비판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도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가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기록을 깼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에 들려온 김형곤씨의 부음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떠돌이 연예인들이 갖는 그들만의 애환으로 애가 살이 되어버린 남사당패의 이야기를 담은 ‘왕의 남자’에는 서민들의 고통을 위로하는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다. 무대에서 웃음을 전했던 김형곤씨의 메시지는 이런 남사당패의 모습과 흡사하다. 왜 사냐건 그저 웃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그는 이승을 떠났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