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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대] 전주 우아동 '참좋은 우리절'

전주시 우아동에 위치한 '참좋은 우리절' 전경, 초파일 법회, 이주노동자 가요제 입상자(위에서부터). (desk@jjan.kr)

전주시 우아동 도심 한복판 빌딩에 절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조계종 ‘참좋은 우리절’(주지 회일스님)이라는 순 우리말로 된 절 이름도 생소하다.

 

이 절은 산중불교, 귀족불교가 아닌 대중의 생활 속에서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절을 만들자는 뜻에 따라 도심 속에 자리했다. 또 어려운 불교용어로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해 절 이름도 한글로 지었고 불공절차와 불경 등도 많은 부분 한글화하고 있다.

 

2000년 4월에 창립된 이후 6년 동안 1600여 세대, 5000여명의 신도들이 찾는 이 절은 이달 5일 전주시 삼천동 계룡산하 외절골에서 새 보금자리를 튼다.

 

지상3층과 지하1층의 건평 600여평, 총면적 2000여평에 달하는 규모로 건립되며 위치 역시 도심에서 멀지 않다.

 

부처님 오신날인 5일 준공식과 함께 ‘어울림과 나눔의 축제’를 연다.

 

이날 행사는 △육법공양 등의 불교의식 체험 △전통악기, 전통의상, 다례시연 등 우리 전통문화 체험 △국악공연, 노래 및 장기자랑 등의 놀이한마당 △양·한방 진료 및 처방약 제공, 이·미용 메이크업 △만찬과 경품행사 등으로 이뤄진다.

 

준비된 모든 행사는 이 절의 신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제각기 가진 재능으로 사회에 봉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날 행사는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유학생들을 초청해 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의를 갖고 있다.

 

참좋은 우리절이 지향하는 바는 대중 속의 생활불교, 시대와 호흡하는 불교, 전통문화와 접목한 불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절은 도심에 위치해 지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한편 찬불가, 불공의식의 한글화 등으로 심리적 거리감도 줄였다. 그러다보니 다른 절들에 비해 젊은 층 신자들이 많은 것도 한 특징이다.

 

또 종교는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최근 문제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가요제 등을 통해 타지에서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종교문제를 떠나 버팀목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이 절은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했던 위상을 토대로 한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결국 사람들에게 친숙한 불교를 만든다는 인식아래 전통문화 체험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

 

 

양해은 참좋은우리절 건립위원장(49)은 “처음엔 많이 어색했던 도심 속 불교, 한글 이름 등이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다”며 “나 혼자만의 깨달음이 아닌 함께 수행한다는 것을 통해 더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참좋은 우리절은 향후 제3세계 국가의 어린이들을 위한 보육시설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일스님은 “우리가 잘 사는 것은 누군가의 몫이 우리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라며 “소외된 이웃,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그들의 몫에 대한 보답을 하고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회일 스님 "대중 속 살아 숨 쉬는 생활불교 만들기 최선"

 

익산에서 태어나 10여살 때 홀로 절을 찾아가 향을 피우는가 하면, 학창시절 항상 염주를 몸에 지니고 교과서 대신 불경을 책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회일(會一)스님.

 

중 2때 출가를 결심했다는 회일스님은 부모님이 불자도 아닌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가부좌 틀고 불경을 봉독하기를 즐겼다. 남과는 다른 학교생활에 대해 그는 전생의 인연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가 어린시절 출가를 꿈꾼 이유는 ‘나 자신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생명과 자유와 평화는 다른 이름의 같은 뜻이라 말하는 회일스님은 90년대 후반 삶의 본질에 대한 고심 끝에 소말리아, 인도 등으로 수행에 나섰다.

 

“출가와 동시에 완전한 인격체가 되는 게 아니라 출가는 더 치열한 수행의 과정을 뜻합니다.”

 

수많은 기아와 질병, 도처에 방치된 시신들을 접하고 총탄이 수시로 날아드는 전장을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는 심정으로 누빈 끝에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고민하는 것은 인식 속의 사치를 하는 것, 배가 부르기에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살 가치를 발견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그는 대중을 위한 사회봉사에 나서기로 했다.

 

전주시 우아동, 도심 속에 ‘참좋은 우리절’을 세우고 사람들을 만나간 것도 누구나 쉽게 다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수행도량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기수행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수행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깨달음을 얻는 것이 목표”라며 “산중불교가 아닌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활불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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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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