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16:50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목욕탕 정치

간디는 목욕을 즐겼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주 뜨거운 물속에서 40분간 목욕을 했다고 한다. 이때 목욕탕 속에서 책을 읽고 명상을 했다. 이것이 생활의 활력소였다.

 

목욕은 옛부터 몸의 때를 벗기는 일 뿐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또 종교적인 행사와도 무관치 않았다. 먼저 목욕재계(沐浴齋戒)부터 하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중목욕탕이 설립된 것은 1924년 평양에서 였다. 당시 공중목욕탕은 부(府)에서 직접 운영했다. 이곳에는 요금을 받고 시설이나 용수, 욕탕 사용인원을 제한하기 위해 관리인을 두었다.

 

그러나 목욕문화는 로마인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공중목욕탕을 제일 먼저 만든 것은 기원전 344년경 스타르타인들이었다. 이들은 열기욕(Hot Air Bath)을 창안해 맨 먼저 사용했다. 이것이 로마의 목욕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는 인근 강에서 11개의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했는데 대부분이 공중목욕탕용이었다. 기원전 33년에는 목욕탕이 170개였고 2세기 후에는 1000개로 늘어났다. 로마에는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요금은 당시 유통되는 가장 최소치의 동전으로 책정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도 목욕을 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는 무료였다.

 

카라카라 황제와 디오크레티아누스 황제 때는 6000여 명이 한꺼번에 목욕할 수 있는 공중목욕탕이 들어섰다. 풋볼 경기장 15개를 합한 크기였다고 한다. 이 시설에는 휴게실, 상점, 도서실, 체력단련실, 미술관 등 다목적 홀을 갖추었다. 이 홀을 쿠어하우스라 불렀다. 말하자면 로마인에게 목욕탕은 휴식과 함께 사교와 오락의 장소였던 셈이다.

 

이같은 공중목욕탕이 18대 총선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동작을 선거구가 그곳이다. 이곳은 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과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전략공천으로 낙하산 투하되면서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이들은 아침 일찍 목욕탕에 나타나 '알몸 유세'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역민들에게 밀착하고 소탈한 서민적 풍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것이 제격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오죽 다급했으면 그랬을까" 하면서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다.

 

노르웨이에 '옷을 벗으면 누구나 평등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들이 총선 후에도 이러한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