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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진화하는 촛불

"촛불은 여러 의식에 다 쓰이는 바 동방(洞房) 첫 밤에도 이걸 켜므로 화촉지전(華燭之典)이니 하는 문자를 쓰며 화톳불·관솔불·등잔불보다도 더욱 전아 화려하다. 청사초롱이나 와옥두실(蝸屋斗室)에는 물론 불전(佛殿)·성당을 밝히는 것도 이것이다." 가람 이병기의 '촛불'이라는 글의 일부다.

 

또 촛불의 시인 신석정은 이렇게 말한다. "촛불은 전기나 석유불처럼 죽은 불이 아니다. 가벼운 바람이 방안을 스칠 때마다 촛불은 예민하게도 흔들 줄을 알고, 연방 녹아갈 때 침정(沈靜)한 송림에 들어선듯 그윽한 냄새도 난다. 그러므로 가장 인공적인 것중에서 가장 자연스런 것이 촛불인가 싶다."

 

촛불은 대개 빛이나 헌신, 고독의 이미지와 통한다. '촛불의 미학'으로 유명한 가스통 바슐라르 역시 촛불을 '몽상가의 내밀한 고독'과 연결시킨다. 혼자 타면서 혼자 꿈꾸는 것, 이것이 촛불 본래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러한 촛불의 기원은 꽤 깊다. 이집트나 뭄바이, 중국의 분묘 등에서 청동으로 만든 촛대가 발견돼, 이미 BC 3000년경에 촛불이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는 심지가 없었고 단순히 소나 양의 기름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구실을 했다. 심지가 있는 양초가 등장한 것은 로마시대였다. 그들은 야간에 집과 기도원을 밝혀주는 양초를 필요로 했다. 가장 보편적인 원료는 쇠기름이었다. 이후 밀랍, 고래 기름을 거쳐 1850년 석유·석탄에서 파라핀 왁스를 뽑으면서 고형의 양초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1879년 전구의 출현으로 화려한 명성을 접어야 했다. 대신 의례나 장식용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러한 촛불이 근래 한국에서는 폭발하는 민심과 거리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되었다. 첫 대규모 촛불시위는 2002년말 미군 장갑차에 치어 숨진 효순·미선양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거리 시위에서 점화되었다. 서울시청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은 장관이었다. 촛불은 인터넷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네티즌들의 언어였고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규탄 시위에서도 재연되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및 광우병 반대 시위도 비숫한 양상이다. 촛불시위는 비폭력과 평화를 지향하는 피플파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의 실종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어디까지 촛불이 진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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