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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독도와 안용복' - 장세균

장세균(논설위원)

일본의 독도에 대한 망언(妄言)은 우리에게 영토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일본의 영토야욕이 자라나는 우리 신세대에게 국가의 존재와 역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꼴이 되었다. 조선의 평민, 안용복은 독도와 울릉도를 지키기위해 살다간 숨은 영웅이다.

 

그는 조선 숙종 시절 경상 좌수영에서 노젓는 병사에서 그 지휘자인 독로군(督櫓軍)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당시 조선은 왜구창궐을 막기위해 해안의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해금(海禁)정책을 폈으나 안용복 당시에는 이 정책이 해이해졌다.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나오는 해산물 임산물을 독점하자 의분(義憤)을 느낀 안용복은 울릉도에 가서 어부 40여명과 생활을 같이 하다 일본인들에게 납치당하여 일본의 "호키주"로 끌려갔다. 일본말에 능숙한 안용복은 호키주 태수앞에서도 조선 사람이 조선땅에 갔는데 왜 당신들이 잡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호키주 태수는 안용복을 막부(幕府)가 있는 에도로 보냈다. 조선 숙종 실록에 의하면 안용복은 그때 에도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므로 앞으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계(書契),즉 국가차원의 문서를 받았다고 쓰여져 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에서 구금을 당하는등 우여 곡절끝에 귀국했으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월경죄(越境罪)라는 죄목이었다. 그에게도 2년형의 형기가 떨어졌다. 형기를 마친 그는 다시 "분노의 도일(渡日)"을 결정한후 조선의 관리로 위장하고 한문을 잘하는 승려와 10명의 일행을 만들어 울산을 출발 울릉도 독도를 거쳐 일본 오키섬에 도착, 오키 관청을 찾어가 조선의 팔도지도를 보이며 "일본이 말하는 죽도(竹島)는 조선의 울릉도이고 송도(松島)는 독도가 아니냐,나는 우리땅에 갔었던 것인데 너희들이 나를 납치하여 월경 혐의를 받도록했었다.나는 호키주 태수를 상대로 소송을 걸려고 일본에 왔다"고 도일 목적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는 그후 일본의 이오시마 섬에 갇히는등 다시 귀국해서도 유배형을 당했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도 그의 기개(氣槪)를 높이 평가한바 있다. 그를 기리는 동상이 부산시 수영동 경상 좌수영터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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