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논설위원)
'배 먹고 이닦기'라는 속담이 있다. 한가지로 두가지 이익을 얻는다는 뜻이다.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배, 특히 배꽃은 옛부터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는 소재였다. 북송 제일의 시인 소동파는 "배꽃이 담백하니 버들은 더욱 푸르다(梨花淡白柳深靑)"고 노래했다. 하얀 배꽃과 푸른 버들의 대조적 색감이 선명하다. 또 "전일(前日)에는 천 그루 배나무 눈에 덮인듯 하더니/ 이제는 나비처럼 하염없이 나부끼네(舊日郭西千樹雪 今隨蝴전作團飛)"라고도 했다.
미국의 자연주의 시인 H.D 소로우는 배꽃을 은가루에 비유했다. "이처럼 희디흰 꽃잎으로 피어나는 꽃은 없다/ 이처럼 훌륭한/ 은에서 쪼개진 은색꽃은 없다/ 오오 하이얀 배꽃이여/…"
고려 후기의 문인 이조년의 시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는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암송되었다. 또 부안의 명기 매창의 '이화우(梨花雨)' 역시 널리 알려진 시조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배꽃일세 배꽃일세/ 큰 애기 얼굴이 배꽃일세"라는 평안도 민요 또한 묘사가 좋다. 금세 훤하게 활짝 핀 처녀 얼굴이 떠오른다.
이처럼 시의 소재로 널리 쓰였던 배는 서양배와 중국배, 남방형 동양배로 나뉜다. 생김새와 맛도 각각 다르다. 한국과 일본은 남방형 동양배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삼한시대부터 배나무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 전주 배와 생강으로 담은 이강주는 조선시대 3대 명주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요즘 나오는 배는 어린이 머리통만한데다 한입 베어물면 단물이 줄줄 흐른다. 맛도 좋을 뿐 아니라 민간에서 단방약으로 널리 쓰인다. 당뇨병 대장암 예방 등에 좋고 담 가래 기침 해열작용 이뇨촉진 숙취해소에도 탁월하다. 또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에 쇠고기 등을 재는데도 사용한다.
이러한 배를 생산하는 과수농가들이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가격 폭락 때문이다. 가장 큰 대목인 추석이 예년보다 빨라 미처 판로를 찾지 못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이후 배 농가가 크게 늘었고 덩달아 생산량도 대폭 늘어났다. 이같은 현상은 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게 더 큰 문제다. 이래저래 농가들만 죽어나고 있다.
/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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