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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계영배(戒盈杯)

연초에도 술을 많이 마신다.술에 따라 마시는 잔도 각양각색이다.막걸리잔 소주잔 정종잔 맥주잔 위스키잔 와인잔등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그 가운데서도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술잔이다.글자 그대로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게 고안됐다.

 

이 술잔에는 대기압과 용기 내의 압력차를 이용하여 수면보다 높은 곳에 물을 올리는 사이펀 원리가 숨어 있다.사이펀이란 용기를 기울이지 않고 속의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옮기는데 사용하는 관을 일컫는 용어로서 그 작용 원리를 사이펀 원리라고 한다.이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게 계영배를 만들 수 있다.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들이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전한다.그는 스승도 못 만든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으나 그후 유명세에 들떠서 방탕하게 생활하다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후 그가 만든 계영배를 조선 후기 의주출신으로 인삼무역권을 독점해서 큰 돈을 번 거상 임상옥이 항상 간직한채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렸다고 한다.작가 최인호는 소설에서 임상옥의 상도였던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즉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고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뜻을 전했다.물과 같은 재물을 혼자 가지려는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로 비극을 맞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그 재물로 파멸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과욕으로 넘치는 경우가 많다.가졌다고 넘치고,안다고 넘치고,잘났다고 다들 넘친다.부질 없는 짓이다.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 넘치는 것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채움(盈)을 경계했던 노자도 지이영지 불여기이(持而盈之 不如其已)라고 했다.지니고 채우기만 하면 그만 둠만 못하다는 말이다.계영배를 통해 각자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여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자족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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