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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동학농민혁명기념일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높이 든 전봉준 장군은 1894년 11월 태인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수하 몇명과 함께 입암산성과 백양사를 거쳐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 있는 옛 동지 김경천을 찾았다.

 

하지만 거액의 현상금에 눈이 먼 김경천은 전봉준을 맞이해 놓고 전주감영 퇴교(退校) 한신현에게 밀고했다. 그러자 한신현은 김영철 정창욱 등 마을사람을 동원해 전봉준을 체포했다. 서울로 압송된 전봉준은 다음해 4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봉준의 체포에 주도적 역할을 한 한신현에게는 금천군수가 제수되고, 피노리 마을사람들은 돈 1000냥을 받았다. 밀고자 김경천은 세상의 눈총과 보복이 두려워 마을 떠나 살았다.

 

이 피체지(붙잡힌 곳)를 둘러싸고 2005년 여름, 정읍시와 순창군이 갈등을 빚었다. 순창군이 이곳을 역사체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하면서 세운 비문에 김경천의 출신지역을 2배나 크게 쓴데서 비롯되었다. 배신자가 순창출신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읍측에서 발끈했다. 정읍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순창군청을 항의방문, 비문 철거 등을 요구하고 시의회도 여기에 가세했다.

 

순창군측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피체지복원위원회 등 사회단체가 나서 최현식 정읍문화원장이 쓴 책을 근거로 "정읍시 덕천면 달천리 출신이 아니냐"고 들이댔다. 한 수 더 떠 정읍에 있는 전봉준장군 허묘에 "순창 피노에 살고 있는 김경천이 밀고했다"고 새겨진 글귀는 김경천이 순창출신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므로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이 논란은 글씨 크기를 본문과 똑같이 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배신의 역사를 지역주민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다른 한편 지역사랑이 얼마나 유치하게 나타날 수 있는가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읍시와 고창군이 동학혁명기념일을 둘러싸고 충돌했다.출신지역 국회의원이 나서 입법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두 지역은 전봉준 장군의 출생지와 동학혁명 발상지를 두고 대립해온 터였다.

 

유성엽 의원(정읍)은 황토현 전승일을, 김춘진 의원(고창 부안)은 연구자에 위임하자는 법안을 낸 것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30-40만 명의 숭고한 희생자를 낸 동아시아 최대의 농민혁명이 소지역주의로 빛이 바래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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