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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일본인 탐방 - 장세균

일본인들의 한국관광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관광목적은 쇼핑관광, 성형관광, 피부 마사지 관광, 역사탐방 등 다양하다. 얼마전에 일본 오오치씨 부부가 익산을 방문했는데 방문 목적은 그들 조상이 백제 27대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이기에 후손으로써 백제의 옛 고토(故土)를 밟아보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들 부부가 똑같이 백제 성왕(聖王)의 자손들이라고 하면서 익산에 소재한 무왕릉과 부여 백제왕릉원 등을 참배했다고 한다. 그들의 조상이기도 했던 백제의 성왕은 왕으로 재위(在位)할 때도 이미 백성으로부터'성왕(聖王)'으로 불리웠을 만큼 많은 존경을 받은 명군(明君)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유난히 전쟁이 많았는데 국왕은 뒤에 있지 않고 선두에서 직접전쟁을 지휘 하다보니 국왕이 전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역사에서 국왕이 전사(戰死)하는 첫 번째 케이스가 바로 백제 9대, 책계왕이었다. 그는 한인(漢人)과 맥인(貊人)으로 구성된 혼성군대의 침략을 막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삼국시대의 국왕으로 마지막 전사자(戰死者)가 바로 백제 성왕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에는 성왕의 성품을 가르켜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에 결단성이 있다"고 하고있다.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밝을 '명(明)'자까지 붙여 '성명왕(聖明王)'이라고 까지 높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성왕에 대해서 "성왕은 천도(天道)와 지리에 신묘하게 통달하였기에 명성이 사방에서 나있었다'고 적었다.

 

무녕왕의 아들로써 즉위한 성왕은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첫째는 회복된 국토를 바탕으로 국호(國號)를 '남부여'로 고치고 부여의 법통을 이어 받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고구려와 대등한 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둘째는 도읍지를 공주의 협착한 웅진성에서 벗어나 사비성, 즉 지금의 부여로 천도했다.

 

성왕은 중국 양나라 문물수용에 도 적극적이어서 공장(工匠)과 화사(畵師)를 구해오게 했다. 그리고 일본에도 불교를 전파하도록 노력했다. 성왕의 업적 중 두드러진 것은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유역을 되찾은 것이다. 일본인들의 뿌리 찾기 관광은 백제고토의 방문에서 비롯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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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균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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