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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우리 고대사 - 장세균

18세기에 발견됐다가 사라져버린 신라 문무왕릉비 조각이 200여년만에 수도 검침원에 의해 주택가 수돗가에서 재발견됐다는 뉴스는 흥미롭다. 이는 1940년대에 이집트의 어느 사막 동굴에서 "도마 복음서"를 발견한 어느 양치기 소년을 연상케도 한다.

 

1796년에 문무왕릉의 비석 조각들이 경주사람에 의해 발견됐다가 행방불명이 된 후 1961년에는 비석의 하단부만 발견되고 이번에는 상단부가 발견됨으로써 문무왕비는 사실상 다 찾은셈이라고 한다. 그 비문에는 문무왕의 조상 즉, 신라 김씨의 가계(家系)에 대한 것이 적혀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270개 성씨중에 김씨가 약 4분의 1이며, 김씨는 다시 120개 본관으로 나누어지지만 대부분 신라, 김알지(金閼智)계와 가야(伽倻)의 김수로왕계에서 분파(分派)됐다고 한다.

 

중국사서(史書)에서는 김알지보다 200년 앞서서 중국 한(漢)나라에 김씨 성을 가진 제후가 있었는데 바로"김일제"라는 사람인데 그는 원래 흉노족 왕, 휴도의 왕자이었으나 한나라에 정복된 후 한무제(漢武帝)의 눈에 들어 제후에 임명되고 김(金)씨라는 성(姓)을 하사받은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들이 번창하다가 나중에 왕망(王莽)의 반란에 가담한 죄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해 한반도로 피신해와 신라의 지배세력이 되었는데 김일제의 7대손, "김성한"이 신라김씨의 시조 "김알지"이며 김일제의 동생 "김윤"의 5대손 "김탕"이 가야, 김수로왕이 되었다는 것이 학계 일부의 주장이다.

 

박혁거세에 대한 새로운 주장도 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운곳은 "서라벌"인데 이곳은 경주가 서울이라는 것이다. 또 서울에서 초기 신라의 박(朴)씨 집단이 청주와 보은을 거쳐 상주(尙州)로 왔다가 경주(慶州)월성으로 남하했다고 한다.

 

또 박씨 집단은 북방계의 오환족(烏丸族)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박혁거세의 "거세(居世)"는 오환족이 사용했던 '거수(居帥)"와 똑같이 부족장(部族長)의 칭호라고 한다. 몽고과학원의 베수미야바하르 교수는 박혁거세를 흉노족(匈奴族)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상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의 저자인 김성호박사의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고대사를 다시보자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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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연 hwangj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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